백장록(百丈錄)

2. 상당․감변

通達無我法者 2008. 2. 18. 08:44
 

2. 상당․감변


  1.

  어떤 스님이 울면서 법당으로 들어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장사지낼 날을 잡아 주십시오.”

  “우선 돌아갔다가 내일 오너라. 한꺼번에 묻어주겠다.”

  2.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西堂)에게 보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峯)스님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스님을 만나는대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3.

  위산(위山)스님이 밤늦게 스님를 뵈러 왔는데 스님께서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화로에 불을 좀 지펴다오.”

  “불씨가 없습니다.”

  “아까 불씨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벌떡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손수 재를 헤쳐 불씨 한덩이를 집어들고는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산스님은 당장에 깨달았다.


  4.

  스님께서 위산스님과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스님이 나무가지 하나를 들고 두어번 분 뒤에 스님께 바치니, 스님께서 말했다.

  “벌레 먹은 나무 같구나.”

  5.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아무라 합니다.”

  “그대는 나는 아는가?”

  “분명합니다.”

  스님께서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대는 이 불자를 보는가?”

  “봅니다.”

  스님께서 문들 말을 그쳤다.


  6.

  어느날, 운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자 소리 높여 웃으면서 절로 돌아오니, 스님께서 말했다.

  “장하다. 이것이 관음이 진리에 드는 문(門)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크게 웃었는가?”

  “제가 아까 북소리가 나는 것을 듣자 돌아와서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그만 두었다.

  이에 장경(長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역시 재(齋)로 인하여 경하하고 찬탄(慶讚)하는 것이로다.”


  7.

  누군가 물었다.

  “경에 의해서 뜻을 이해하면 3세 부처님이 원수이고, 경을 떠나서는 한마디라도 마(魔)의 말과 같다 하는데 어찌합니까?”

  “동작을 굳이 지키고 있으면 3세 부처님이 원수요, 이 밖에 따로 구하면 마의 동작과 같다.”

 

  8.

  어떤 스님이 서당(西堂)스님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도 않고 대답치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썩을까 걱정해서 무엇하려는가?”

  스님께서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 노장을 수상히 여겼다.”

  한 스님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하자 스님께서는 “일합상(一合相)은 얻을 수 없다”하셨다.


  9.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이렇게 시켰다.

  “장경(章經)스님에게 가서 그가 설법하려고 상당하거든 절하고 일어나니 그이 신발 한 짝을 들고 소매로 먼지를 턴 뒤에 머리에 거꾸로 이고 나오라.”

  그가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낱낱이 시행하니, 장경스님이 말

했다.   

  “내가 잘못했다.”

  10.

  스님께서 행각할 때 선권사(善權寺)에 가서 경을 보려 하니, 주지가 허락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선승(禪僧)이 의복도 단정치 못하니 경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스님께서 그래도 경 보기를 간절히 청하니. 마침내 허락하였다. 스님께서 경을 다 본 뒤에 바로 대웅산(大雄山)에 가서 가르침을 폈다. 그 뒤, 공양주(供養主)를 하던 스님이 선권사로 와서 주지를 만나니, 주지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대웅산에서 왔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는가?”

  “아마도 우리 스님께서는 행각하실 때, 이 절에서 경을 보신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海:백장)상좌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합장을 하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범부로다. 그때는 그가 인천(人天)의 참 선지식임을 몰랐다!”


  11.

  또 물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소(疏)를 지으려 합니다.”

  주지가 손수 소를 지어 온갖 일을 가르쳐 준 뒤에, 공양주를 데리고 스님께 왔다.

  스님께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얼른 산 밑으로 내려와서 그 들을 맞이해 와서 모든 인사를 마치고는 주지에게 선성(禪床)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 주지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주지가 사양타 못해 자리에 오르니, 스님께서 물었다.

  “주지께서는 강을 하실 어떻게 하시오?”

  “마치 금쟁반에 구슬 굴리듯 합니다.”

  “금쟁반을 들어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주지가 대답을 못했다.


  12.

  또 물었다.

  “교(敎)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文殊) 보살의 경지와 같다’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처님과 같아야지 어째서 겨우 문수와 같다 하겠소?”

  주지가 또 대답치 못했다.

  이 일로 납의(衲衣)를 입고 선(禪)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

화상이라 했으니, 그가 곧 제2의 백장(百丈涅槃)이었다.


  13.

  스님께서 어느날 저녁 깊은 잠에서 깼는데 갑자기 더운물이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져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서 시자를 불렀

다.

  “큰 스님께서 더운물을 찾으시오.”

  시자가 벌떡 일어나 물을 끓여 스님께 가지고 오니, 스님께서 놀라 물었다.

  “누가 이렇게 물을 끓여오라 하던가?”

  시자가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니, 스님께서 손가락을 퉁기면서 탄식했다.

  “나는 결국 수행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만일 수행할 줄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나는 토지신에게 내 마음을 들켜 이렇게 되었다.”


  14.

  스님께서 운암(雲岩)스님을 보자 다섯 손가락을 들어 세우면

서 말했다.

  “어느 것이 그대인가?”

  운암스님이 “아닙니다”하니 스님께서 “어찌 그렇겠는가?”

하셨다.


  15.

  어느날, 스님께서 4경(새벽1시에서 3시)이 되도록 법당에

앉아 있었다.

  그때 시자이던 운암이 세 차례나 곁에 와서 모시고 서 있었

다. 세번째 와서 모시고 섰을 때는 스님께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침을 뱉으니 이에 시자가 물었다.

  “스님, 지금 어째서 침을 뱉으셨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저는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에게 하시겠습니까?”

  “물을 필요가 없다.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고 또 내가 말 할 일도 아니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라도 알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못나 조금 전에 갑자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나길래 침을 뱉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보리와열반, 요의(了義)를 말씀하셨습니까?”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대가 물을 일이 아니며,

그대의 경계도 아니라 하지 않더냐.“


  16.

  스님께서 법어를 내렸다.

  “목구멍도 입술도 다물고서 속히 일러보라.”

  어떤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겠으나 뒷날 내 자손들을 속일 것이다.”

  이 말씀에 운암스님이 대답했다.

  “스님, 지금도(스님의 자손이)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소리쳤다.

  “우리 자손들을 망쳤도다.”


  17.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견(見)의 강물이 코끼리도 떠내려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보셨습니까?”

  “보았다.”

  “보신 뒤엔 어떠셨습니까?”

  “견(見)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았느니라.”

  “이미 말씀하시기를, ‘견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신다’하셨는데 견으로써 견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견을 다시 본다면 앞의 것을 보십니까? 뒤의 것을 보십니까?”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견을 볼 때에 견은 견이 아니니라. 견은 견까지도 연윈 것 이어서 견으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18.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옛사람이 한 손을 들거나 한 손가락을 세우고서도 그것을 선이다 도다 하였는데 이 말이 끝없이 무수한 사람을 속박하는 구나. 설사 아무말 않더라도 역시 입으로 짓는 허물이 있다.

  부(부)상좌가 이 일을 들려주며 취암(翠岩)스님에게 물었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그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상좌가 이틀을 말없이 지냈는데 취암스님이 부상좌에게 물었다.  “엊그제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대 뜻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부상좌가 손을 번쩍 드니, 취암스님이 다섯 활개를 땅에 던져 절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19.

  스님께서 어느날 시자더러 제1좌(座)에게 가서 이렇게 묻게하였다.

  “실제의 이치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사(佛事)를 하는 쪽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한 말씀은 궁극적인 교설(요義敎)에 속하는가. 방편교설(不了義)에 속하는가?”

  제1좌가 대답했다.

  “물론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 속한다.”

  시자가 돌아와서 아뢰니, 스님께서 시자를 때려서 내쫓았다.


  20.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도에 들어 활짝 깨닫는 대승법(大乘入道頓悟法)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우선 그대는 모든 반연을 쉬고 민사를 쉬어서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등 세간의 온갖 것들을 모두 놓아버린 뒤에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 몸과 마음을 놔버려 자유롭게 하면, 마음은 목석(木石)간이 되고 입으로는 말할 것이 없고 마음으로는 분별할 길이 없어진다. 마음은 허공 같아 지혜의 해가 저절로 나타나는데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나둣 할 것이다. 온갖 반연인 탐욕․성냄․애착 등을 모두 쉬어서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생각이 다하여 5욕(五欲)과 8풍(八風)을 대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러한 속박을 받지 않으며,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신통과 묘용(神通妙用)을 갖출 것이니 이는 해탈한 사람이다. 온갖 경계를 대할 때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둘 것도 흩어버릴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런 이를 도인(道人)이라 한다.  온갖 선악(善惡)과 더럽고 깨끗함, 유위

(有爲)세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만 않으면 그것을 부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나 그른 이치 등 모든 소견을 다 없애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어딜 가나 자유로우면 그

것을 처음 발심한 보살이 당장에 부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모든 법은 스스로가 말하지 않아서, 공(空)도 스스로를 공이라 하지 않고 색(色)도 스스로를 색이라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 더럽고 깨끗함도 사람을 속박할 생각이 없는데, 사람들 스스로 함부로 헤아리고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킨다. 그런데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도 머무르지 않고 해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온갖 유위 무위의 견해가 없이 평등한 마음씨로 생사에 처한다면 그 마음은 자유로울 것이다. 마침내는 헛된 번뇌와 5온,18계, 생사와 모든 감관과 어우르지 않고 훤출히 뛰어나 의지한 곳이 없을 것이다.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아서 가고 옴에 자유로우니, 생사의 길에 왕래하되 마치 문을 여닫는 듯할 것이다.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명예나 의식(衣食)등의 이익을 생각지도 말고, 온갖 공덕이나 이익 등을 탐내지도 말며, 세상 법에 마음을 걸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친하고 좋아하며 괴롭고 즐거운 것이라도 생각에 두지 말며, 거칠은 음식으로 목숨을 잇고 옷을 입되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 우뚝하니 바봐 같고 귀머거리 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그만치 가까와질 여지가 있다. 생사(生死)의 길에서는 알음알이를 널리 배우거나 복과 지혜를 구하여도 진리에는 이익이 없고, 도리어


알음알이의 경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말려 생사바다로 돌아가

게 될 것이다.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진리는 구할 것이 없는 이치니 구하면 잃는다. 그렇다고 구함

이 없는 것에 집착하면 도리어 구하는 것과 같다.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으니, 만일 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아서 5음․18계․5욕․8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옴에 자유로와 모든 유위(有爲)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뒷날엔 속박없는 몸으로 중생과 동화되어 이익케 하고 속박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응하며 속박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서 병에 맞추어 약을 줄 것이다.“


  21.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계를 받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온갖 착한 법을 다

갖추면 해탈을 얻겠습니까?“

  “조금은 해탈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온

갖 해탈을 얻지는 못한다.“

  “무엇이 마음의 해탈입니까?”

  “부처도 구하지 않고, 알음알이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고 깨끗한 생각이 다한 뒤엔 이 구함없는 경지도 옳다고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다한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고, 지옥의 속박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천당의 즐거움도 좋아하지 않고, 일체법

구애되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하여 걸림이 없게 될 것이니 몸과

마음 등 모두를 해탈이라 하게 된다.

  그대들은 조그만한 계행이나 선행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치

말라. 항하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무루(無漏)의 계․정․혜를 가졌다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 열심히 용맹정진하라.

귀 먹고 눈 어두운 늙음의 고통이 몸에 다가올 때까지를 기다리지 말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 갈곳이 없으니 이 지경이 되면 손발을 쓰려 해도 소용이 없다.

  설사 복과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하여도 전혀 구제할 수 없는데,

그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못하고 오직 모든 경계를 반연하여

돌이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일생 동안의 악업(惡業)이 모두 앞에 나타나서 반갑거나 두려운 6도와 5온이 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훌륭한 집․배․수레로 보여서 찬란히 빛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탐욕과 애착을 따랐기에 모두 좋은 경계로 보이는데, 보이는 데 따라서 인연 많은 곳으로 태어나니 전혀 자유가 없어 용이 될지 축생이 될지 양반이 될지 상놈이 될지 전혀 기약이 없다.”

  “어찌해야 자유로와집니까?”

  “이제 5욕과 8풍을 대하여도 마음에 버리거나 선택함이 없고, 더럽거나 깨끗함이 모두 없어져서 하늘의 해와 달이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고 비추는 것같이 되어,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고 강을 건너는 코끼리같이 전혀 의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22.

  스님께서 또 말했다.

  “경을 읽거나 서적과 어록을 보는 목적은 모두가 자기에게로 돌아가야 된다. 온갖 교법은 오직 현재 감각하는 성품인 자기를 밝히는 것이라야 하는데, 유무(有無)의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導師)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어 무찌르셨으니, 이것이 「금강경」에 있는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루게 될 것이며,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어 수행도 아니고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만일 세상이 좋은 일뿐이라 하거나 밝은 사람 쪽으로만 향하다면 이는 옹색한 사람이다. 10지(地)에서도 세상의 흐름을 해탈치 못하고 생사(生死)의 강으로 흘러들어가니, 지식으로 어구(語句)를 찾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된다.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니, 지금이라도 유무(有無) 모든 법을 여의어 3구(三句) 밖으로 뛰어나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스스로가 부처인데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더욱더욱 부자유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진리의 바탕 위에 서지 못한 채 복과 지혜가 있는 것은 마치 천한 이를 귀하다 하는 것 같으니, 진리의 바탕에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 행동하니

만 못하다. 그렇게 되면 흙을 가지고 금을 만들고 바닷물을 소酪(소酪)으로 바꾸며, 수미산을 뭉개 먼지를 만들며, 한 이치를 무량한 이치로 하고 무량한 이치를 한 이치로 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조칙으로 시호를 대지(大智) 선사라 하고, 탑호(塔號)를 대보승(大寶勝)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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