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56. 승려의 자리를 지킴 / 도법사 (道法師)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4:25
 

56. 승려의 자리를 지킴 / 도법사 (道法師)



도법사 (道法師) 는 서경 (西京)  순창 (順昌)  사람이다. 선화 (宣和:1119~1125)  연간에

조서를 내려 승려의 법명을 도교식으로 바꾸게 한 일이 있었다. 법사는 임영소 (林靈固:道

士) 와 옳고 그름을 항변하고 조정에 상소하였는데, 황제의 뜻을 거슬려 도주 (道州) 로 유

배를 가게 되었다. 그때 호송하는 관졸 〔監防〕 이 유배지는 여기서 만리 길이나 되니 마

늘 등 냄새나는 음식이나 술 등으로 몸에 힘을 돋구어야 한다고 하니 법사는, 죽는 것은 천

명인데 불법에 금한 일을 범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관졸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복종

하였다.

법사가 유배지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군수가 밤에 불상이 형틀을 지고 성에 들어 오는 꿈

을 꾸었고, 군의 관리들도 같은 꿈을 꾼 사람이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법사가 도착하

니 태수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ꡒ죄를 짓고 오는 사람은 반드시 남다른 인물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곳에 유배된 지 한달이 안되었는데 그 군 사람의 반 이상이 병에 걸렸다. 법사가

못을 파서 물에 축원을 드리니 그 물을 마신 사람은 병이 나았다. 그리하여 그 지방 사람들

모두가 어버이나 스승 이상으로 법사를 공경하고 섬겼다. 이에 그곳에서 추방당하여 그 길

로 떠나 장사 (長沙)  땅을 지나다가 적음존자 (寂踵尊者, 慧洪覺範:1171~1128) 를 만났는

데 그가 시를 남겨 주었다.



도법사의 간담은 몸집보다 더 커서

감히 황제의 뜻을 거슬리고 간언을 올렸도다

어깨에는 가사를 걸치고 등에는 불법을 지고자 했기에

때문에 달갑게 목을 내밀어 형틀을 받았네

3년 유배에도 마음에 부끄러움 없었고

만리 길 돌아와도 모습 여위지 않았도다

훗날 불교문중에 벼리 〔綱紀〕 가 될 분인데

요즘 듣자니 벼슬아치들 조정으로 달려간다 하네.

道公膽大過身軀  敢逆龍鱗上諫言

只欲袒肩擔佛事  故甘引頸受誅鋤

三年竄逐心無愧  萬里歸來貌不奇

他日敎門綱紀者  近聞靴笏.喙朝趨



당시 공경대부들은 법사에게 문무 (文武) 의 재략 (才略) 이 있으니 조정에 청하여 벼슬을

주어 관직에 충당하고, 군사 통솔권을 나누어 주어 옛 강토를 되찾게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법사가 극구 사양하자 조정의 명신들이 법사의 지조를 뺏을 수 없음을 알고 황제께 아뢰어

「보각원통법제대사 (寶寶覺圓通法濟大師) '라는 호를 하사하도록 하였다.

소흥 (紹興:송 고종 즉위년, 1131) 으로 연호가 바뀌자 황제의 명으로 궁에 들어 가니 황제

가 말하였다.

ꡒ선황제 (先皇帝:徽宗) 께서 요망한 술수에 속아 그대의 얼굴과 법복을 망가뜨렸으니 짐이

그대 얼굴의 먹자욱을 없애주어도 되겠소?"

그러자 법사가 대답하였다.

ꡒ신이 비록 성은에 감복하오나 선황제께서 내리신 보배 먹자욱을 지워 없앨 수는 없습니

다."

황제는 ꡒ이 스님이 늙어서까지 꼬장꼬장하구나!" 하면서 편할대로 하라고 허락하였다.

소흥 3년 (紹興:1133) 에 법사는 도사 (道君)  유약겸 (劉若謙) 과 함께 조정에 들어가 기도

도량의 서열을 정비하였는데 그때 올린 상소는 대략 다음과 같다.



ꡒ숭녕 (崇寧:1102~1106)  연간에 임영소 (林靈固)  등이 높은 벼슬을 멋대로 차지하여 조

정의 기강을 문란케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도교가 불교의 서열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그

러나 건염 (建炎:1127~1130)  연간 후로 도사들의 모든 재산은 다시 몰수되고 관의 비호도

없어졌으니 마땅히 조종의 옛 제도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조정에서 현명한 지

휘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개정령을 내려 천하에 반포하고 시행케 하여 풍속을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국정에 일이 많아 이 주장은 유보되었으나 소흥 13년 (1143) 에 와서 다시 정돈하는

모임을 열어 승려들은 왼쪽에, 도사들은 오른쪽에 자리할 것을 영원한 규정으로 삼았다.

그후 가뭄 귀신으로 백성들이 시달리자 황제의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리게 되

었다. 법사는 자리에 올라가자 금으로 된 물병 네 개를 빌려서 병마다 산 붕어를 넣고 물을

뿜어주며 가만히 축원하였다. 그리고는 곧 발빠른 사람 넷을 시켜 물고기를 강과 소 (沼) 에

놓아주게 하였는데, 그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비가 쫙 퍼부으니 황제의 얼굴이 매우 기쁜 기

색이었다. 「탑명 (塔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