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人天寶鑑)

66. 파초와 대나무를 벗삼아 / 가구 (可久) 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14:43
 


66. 파초와 대나무를 벗삼아 / 가구 (可久) 스님



고승 가구 (可久) 는 전당 (錢塘)  사람이다. 강원을 두루 다녀 천태의 종지를 깊이 터득하

고, 그 뒤 상부사 (祥符寺) 에 살았다. 스님은 옛 음률로 시 짓기를 좋아하여 담담하면서도

맑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소동파 (蘇東坡) 는 스님을 ꡐ시로 (詩老) '라고 불렀다. 소동파가

정월 대보름에 관료들과 함께 관등놀이를 갔다. 그는 혼자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스님이 조

용히 앉아 좌선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절구 (絶句)  한 수를 지었다.



문 앞엔 노래소리 북소리 왁자지껄한데

말쑥한 방 하나, 얼음같이 차구나

부질없이 유리로 사물을 비쳐보지 않고서야

무진한 그것이 본래 등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네.

門前歌鼓뇨紛崩   一室蕭然冷欲氷

不把琉璃閑照物   始知無盡本非燈



스님은 매우 엄격하게 몸을 다스려 눕지 않고 지내며 하루 한끼 먹고 행주좌와 어느때고

법복을 벗은 일이 없었다. 스스로 근검절약하여 평생 누더기 한 벌을 바꾸지 않았으며, 혹

양식이 떨어지면 벽곡 (獗穀:곡물을 먹지 않고 솔잎이나 야채를 먹음) 을 하며 좌선할 뿐이

었다.

만년에는 서호 (西湖)  가에 살았는데 말끔한 선상 (禪滅)  하나 뿐 쓸데없는 물건은 남겨

두지 않았다. 창밖에는 오직 붉은 파초 몇대공과 푸른 대나무 몇백줄기 뿐이었는데 그곳을

스스로 ꡐ소소당 (蕭蕭堂) '이라 이름 짓고 살았다. 임종하면서 사람들에게 ꡒ내가 죽고나면

파초와 대나무도 죽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뒤에 그 말대로 되었다. 「이운집 (怡雲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