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6. 현상인(顯上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1:29
 





16. 현상인(顯上人)에게 주는 글



견처(見處)가 투철히 통하고 용처(用處)가 명백하니, 번개 치듯 기봉을 휘두르며 물소뿔에 달무늬 지듯 하며(結角羅紋) 종횡으로 뒤섞여도 스스로 능히 회전해서 막힘과 걸림이 없어야 한다. 또한 견해를 세우지도 않으며 기틀을 남겨두지도 않은 채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듯 도도해야 한다.



근원을 깨달아 들어갈 경우 연원에 사무치면 될 뿐, 수증(修證)에 관계할 것(回互)이 없으니, 앎도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데 더구나 알지 못하는 경우이겠느냐. 하루 종일 이렇게 얽어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주관과 객관, 나와 남을 간직하지 않으니 불법이 무슨 상관이리요. 이 무심(無心)·무위(無爲)·무사(無事)의 경계를 어찌 총명하고 영리하고 지혜롭고 분별있고 지식 많은, 세속의 근본 없는 사람이 헤아릴 수 있으랴.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올 적에 어찌 이 법을 가지고 왔으랴! 달마스님은 오직 각각의 본인에게 본래 있는 성품을 곧바로 지적해서 그들로 하여금 분명하고 철저하게 드러내도록 하여, 수없이 많은 잘못된 깨달음이나 잘못된 지식, 망상과 계교에 물들지 않도록 하였다.



참구를 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며 진정한 스승을 만나야 한다. 풀 구덩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말고 당장에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땀 냄새 밴 장삼을 벗어버리고 가슴 속을 텅비워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령된 생각이 없어야 하며, 밖으로 치달려서 구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담담하고 진실하면 모든 성인들이라도 밀쳐버릴 수 없다. 한 덩어리 적나라한 마음(田地)을 가지고 공겁(空劫)의 저쪽으로 투철히 벗어나면 위음왕불(威音王佛)도 오히려 손이거니, 하물며 다시 남을 쫓아 찾으려 하겠느냐!



조사 이래 본분 작가들은 모두 이러하였다. 저 육조(六朝)스님의 경우, 신주(新州) 땅 일개 땔감장사에 불과하여 눈으로는 글자도 알아볼 수 없었으나 대만 홍인스님을 한 번 뵙자 가슴을 열고 투철히 벗어버렸다. 그런 즉 비록 성현이 세상 자취를 묻고 살아도, 요는 방편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이 일은 훌륭하고 어리석음에 관계없이 모두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 있다.



이제 이미 참선하는 부류에 들어갔다면 매일같이 그윽한 마음으로 참구해야 하리라. 이 큰 인연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이 일은 몹시 날카로운 근기로 본분사를 걸머지고 더욱 나아가는데 있으니, 백천 번을 단련해서 순금을 만들 듯 나날이 망상을 덜고 도를 늘려야 한다.



티끌세계를 벗어나는 요점과 중생을 이롭게 하는 근본은 무엇보다도 일곱 번 뚫고 여덟 번 거듭 뚫어서 어느 모로도 의심 없는 안온한 데 도달하여, 대기대용의 경지를 얻어야만 한다. 이 공부는 바로 은밀한 작용 가운데 있다. 매일 만 가지 인연이 엇갈리고 세속의 번뇌가 어지럽게 일어나 맞고 거슬리고 얻고 잃는 등의 경계가 즐비한 속에 출몰하면서도, 그것들에 굴림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굴려서, 활발하여 물을 뿌려도 적셔지지 않는 경지라야 이것이 바로 자기의 역량인 것이다.



나아가 고요하고 텅 비어 응연(凝然)한 데 이르러서도 다른 것이 아니다. 내지는 기묘한 말이나 험하고 빼어난 기연과 경계까지도 한결같이 공평할 뿐 전혀 득실이 없으면, 모두 나의 쓰임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래 갈고 닦으면 생사의 순간에 훌쩍 벗어나, 세간의 부질없는 명예와 이익을 마치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처럼 보고, 또 꿈과 허깨비와 헛꽃처럼 여겨서, 아무 힘 들이지 않고 세상을 건너는 것이니, 어찌 티끌세계를 벗어난 큰 아라한이 아니겠느냐!



골좌(骨 )스님은 평생토록 누가 묻기만 하면 "뼈를 잘라라[骨 ]"라고 대답을 했는데 마치 무쇠탄알과 같아, 참으로 긴요하고 초준하다 하겠다. 이를 잘 참구한다면 참으로 조사 문하의 사자라 하리라.



혜충국사(慧忠國師)가 본정선사(本淨禪師)에게 물었다.

" 그대는 일체의 미묘한 법문을 볼 때 어떠한가?"

" 한 생각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 바로 이것이 너의 집안일로, 참구하는 자가 여기에 도달해야 말끔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참으로 본분소식에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