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20. 온초감사(蘊初監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1:35
 





20. 온초감사(蘊初監寺)에게 주는 글



그대에게 한 마디라도 해주면 벌써 더러운 물을 사람에게 끼얹는 셈이니, 더구나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며 선상을 치고 불자를 세우며 "이 무엇이냐"고 묻고 할을 하고 방망이질을 하는 것 등의 이 모두는, 평지에 쌓인 뼈무더기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부처와 법과 선과 도를 물으면서 자기를 위해달라 하고 지도해 주기를 빌며, 향상이니 향하니 하는 불법의 지견, 말씀이나 도리를 구하니,, 역시 진흙 속에서 흙을 씻고 흙 속에서 진흙을 씻는 격이어서, 어느 때에 말숙히 벗어난 경지에 이르겠느냐.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는 문득 속으로 따지기를, "나는 알아버렸다. 불법은 본래 아무 일 없는 것으로서 누구나 다 갖고 있다. 종일토록 밥 먹고 옷 입는 데 무엇이 조금이라도 부족하였던가?"라고 하면서, 문득 하릴없는 일상의 경계 속에 안주해버린다. 이야말로 '이러한 일'이 있는 줄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분 속의 사람이라야만 위로부터의 종승본분(宗乘本分)을 알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실제로 깨달아 들어간 곳이 있다면 일어났는지 자빠졌는지를 식별하고, 나아갈지 물러날지를 알며, 허물 쉴 줄을 알고 번뇌를 떠난다. 나날이 가까워지며 더욱 좋은 쪽으로 변해가되 소굴을 지키지 않고 올가미에서 벗어나와 천하 늙은이의 혀끝을 의심치 않는다. 생철(生鐵)을 단련하듯 노력 수행하면서 공양한 뒤에야 다함없는 법등을 태우고 끊임없는 도를 실천한다. 몸과 목숨을 버리면서 뭇 생령을 건져내 그들 각자가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 집착의 결박을 버리게 한다.



그러면 부처나 조사에 집착했던 병이 모두 치유되고 해탈의 깊은 구덩이에서 이미 벗어나서 함이 없고 하릴없는 쾌활한 도인이 되리라.



그러나 자신을 제도하고 나면 모름지기 행원(行願)을 버리지 말고 모두를 제도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살바야해(薩婆若海)에서 배가 되어야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상응함이 있으리라.



바싹 메마른 사람이나 노주등롱(露柱燈籠)이 되지 않도록 삼가해야 한다. 정갈스런 공[毬]처럼 되어 자신의 일만 마친다면 무슨 일을 이루랴. 이 때문에 옛스님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한 가닥 길을 가면서 보답할 수 없는 큰 은혜를 감당하여 보답하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제방에는 영리한 납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당장 깨달으려고만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 지나치게 탐구하여 쉽게 알려 들고, 그러다가 겨우 나아갈 길을 알기만 하면 즉시 세상에 나오고 싶어한다. 반대로 또 하나의 잘못된 무리들은 추천해도 세상에 나오지 않으려 하는데, 이도 역시 원만하게 통하진 못한 것이다. 시절인연을 알아서 기회를 잃지 말아야만 막힘없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