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일서기(一書記)에게 주는 글
영특하고 신령한 납자는 바탕이 뛰어나고 남다른 자태를 쌓아서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세속의 벼슬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세상의 들뜬 명예를 나는 티끌이나 뜬 구름 혹은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본다. 숙세의 대근기(大根器)로써 생사문제를 훌쩍 뛰어넘고 성인과 범부를 끊는 일이 있음을 안다.
이리하여 삼세여래가 깨달으신 금강정체와 역대조사가 단독으로 전한 오묘한 마음을 그대로 밟아 향상(香象)과 금시조(金翅鳥)가 된다. 요컨대 억천만 부류 위에서 달리고 날며 뭇 흐름을 끊어버리고 하늘을 나는데, 어찌 고니나 제비가 되어 이기고 지고 높고 낮음에 얽매이며, 목전의 전광석화 사이를 비교하면서 이로움과 해로움에 휘둘리겠는가.
이 때문에 옛날 크게 통달한 사람은 세세한 일을 기억하지 않고 천박한 일을 도모하지 않았다. 문득 불조의 경지를 높이 초월할 경지를 세우고 그 누구도 감당해내지 못할 무거운 짐을 걸머지려 하였다. 그리하여 나루터에서 4생 9류(四生九類)를 건네주며 괴로움을 없애고 편안함을 널리 주려 하였다. 도를 가로막는 우매함을 타파하고 무명의 전도된 독화살을 꺾어버렸다. 그리고 법안(法眼)의 견해 가시를 뽑아내어 본지풍광을 맑히니, 공겁 이전의 면목이 밝게 드러났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추위와 더위를 꺼리지 않고 뼈저리는 뜻과 고상한 행동으로 세 가닥 서까래 아래서 원숭이 같은 마음을 죽여 버리고 말같이 뛰는 의식을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고목과 썩은 나무같이 하여 갑자기 뚫어버리니, 어찌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랴. 가리워졌던 것을 드러내서 어두운 방에 밝은 등불을 켜고 나루터에서 배가 되고자 한다면, 큰 해탈을 증득하여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단박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진리[理]에 들어가는 문을 통달하고 그런 뒤에 보광명장(普光明場)에 올라 번뇌 없는 청정한, 그리고 수승하고 위대한 법공의 자리에 앉는다. 바다 같은 입에서는 물결이 출렁이듯 걸림 없는 네 변재[四無碍辯]를 떨친다. 한 기연을 세우고 한 마디를 내려 주며 한 수승한 모습을 나타내어 널리 범부·성인·유정·무정들이 모두 위엄스러운 광채를 우러러보며 은혜를 입게 하여도, 이는 아직 절승한 공훈의 상태는 아니다.
다시 저쪽으로 더 나아가서, 모든 성인들이 가두어도 갇히지 않고 모든 신령이 경모하려 해도 방법이 없으며, 모든 하늘이 꽃을 받들 길이 없는데, 마구니 외도가 어떻게 옆에서 엿볼 수 있으랴.
지견을 놓아버리고 현묘함을 몰아내며 작용을 날려버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애초에 유심(有心)이니 무심(無心)이니 옳은 생각이니 잘못된 생각이니를 모르는데, 하물며 이제까지 배워 이해한 현묘함, 이치와 성품의 분류[分劑]와 명상(名相)에 꽉 막힌 지견과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 그리고 천지를 뒤흔들 세간의 지혜와 총명함에 연연하랴. 스스로를 얽어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린들 무슨 믿을 만한 점이 있으랴.
참으로 대장부라면 힘써 적을 이기고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해서, 자기의 본래 뜻과 발원이 만족해야만 본분의 큰마음과 큰 견해로 크게 해탈하여 함이 없고 일 없는 참다운 도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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