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종각선인(宗覺禪人)에게 주는 글
종문에서는 날카로운 지혜를 가진 최상근기로서 생사를 벗어나고 지견을 끊으며 언설을 여의고 성인과 범부를 초월하는 오묘한 도를 가진 자를 제접한다. 그러니 어찌 천박하고 좁은 식견을 가지고 도리를 따지거나 기연·경계 등의 알음알이 위에서 살 궁리를 하는 자가 헤아릴 수 있으랴.
반드시 용과 호랑이처럼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를 요한다. 그들은 재빠르고 날카로운 역랑을 써서 거량하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바로 떨치고 일어나 떠나버린다. 밖으로는 세간의 속박과 집착을 버리고 안으로는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미혹한 생각을 버리고, 곧바로 홀로 아득하여 높고 초준한 곳에 도달한다. 실낱만큼도 의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분명히 알아차리고 온몸으로 짊어져, 부처님이 와도 현혹되어 동요하지 않는데 하물며 조사나 종장의 말과 기봉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한 칼에 끊어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그 밖의 잡다한 것들에는 무심해야 조금이라도 뛰어난 무리(上流)와 상응할 수 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영가(永嘉) 스님은 조계에 들어서자마자 사자후를 하였으며, 단하(丹霞) 스님은 마조 스님이 선불장(選佛場) 보여주는 것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결판을 냈으니, 이들은 두 스님 앞에 이르자마자 흐름을 거슬러 투합하였던 것이다. 또 양좌주(亮座主)는 한 마디 말끝에 42본(四十二本) 경론이 얼음 녹듯 하였고, 덕산스님은 (용담스님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순간 경론의 소초를 모두 태워버렸으며, 임제스님은 육십 방망이를 맞은 뒤에 돌연 내던졌으니 모두가 투철히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일찍이 몇 차례나 조사의 방에 들어갔으며 법문을 몇 차례나 청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납자들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대개는 그저 공안이나 기억하고 예와 지금을 비교하여 따지고 말을 외워 복잡한 이론을 풀고 표방하는 주장을 배운다. 그러니 어느 때에 쉴 수 있으랴. 이렇게 한다면 한바탕 너절한 잡동사니만을 불러낼 뿐이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을 추궁해 보건대, 위로는 아직 작가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는 대장부의 뜻과 기상을 걸머지질 않았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로 돌아서서 정신을 차리고 이제껏 가져왔던 승묘(勝妙)하다는 생각을 놓아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벗어나 본분의 일대사 인연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일생을 애써 수고한다 해도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말리라. 때문에 옛사람은 "보리는 말을 떠났으며 애초부터 얻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또 덕산스님은 "나의 종지에는 말이 없으며, 아무 법도 사람에게 줄 것이 없다" 고 하였으며, 조주스님은 "부처[佛]라는 한 마디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들을 보면 벌써 흙을 뿌려 사람들을 호도해버린 것이다. 만약 다시 몽둥이질 속에서 현묘함을 구하고 "할"소리에서 오묘함을 찾으며 눈을 부릅뜨고 손과 발을 움직인다면 더욱 여우의 소굴로 떨어지게 되리라.
이 종지는 깨달음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은산철벽의 만 길 깎아지른 벼랑에서 전광석화가 치는 가운데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다면, 바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리라. 때문에 옛부터 보호하고 아껴왔던 이 하나[一看子]는 함께 도달하고 함께 깨달은 이들이 그대가 움켜잡거나 더듬을 여지가 없는 곳에서 마음을 다하여 얽힌 인연을 버리고서 선지식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였다.
만일 다시 천만 어려움 속에서 마음이 참아내지 못하고, 어리댈 수 없는 곳에서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고 궁구하여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진실로 애석하리라. 천생백겁(千生百劫)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부가 끊어진 적이 있었더냐. 끊어진 적이 없었다면 무슨 나고 죽고 가고 옴을 의심하랴. 인연에 속한 일은 본분사에 있어선 아무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조(五祖) 노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기 50년을 있으면서 선상 맡에 왔던 무수한 납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만 부처를 찾으며 불법을 말할 뿐이었으니, 결국 본분납자를 만나보지는 못하였다" 하였는데 참으로 그렇다. 요즈음시대를 살펴보면 불법을 설명하는 사람조차도 만나기 어렵다. 그러니 더구나 본분(本分)을 구하는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시절이 말세여서 성인과 간격이 더욱 멀어져 우리 당(唐)나라 안에는 부처의 종족들을 살펴보고 살펴보아도 다 없어졌다. 하나나 반개의 지조 있는 이를 얻기는 해도 감히 옛 큰스님들과 같기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수행해 나아갈 바를 알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르게 한다면 벌써 이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 격이니, 부디 모든 인연을 떨쳐버려야 된다.
그러면 고래로 크게 깨달았던 이들의 가슴 속을 알아버리니, 어디를 가든지 쉬어서 은밀한 행을 실천하리라. 그리하여 모든 천신이 꽃을 받들 길이 없으며, 마군외도가 찾아도 자취를 볼 수 없게 되리니 이는 진정한 출가인이다. 자기를 철저히 요달하여 만약 복(福)에 보답할 인연이 있다면, 세상에 나와서 한 손을 드리운다 해도 분수 밖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결판내어 긍정한다면 결코 서로 속이지 않으리니, 노승의 이런 말도 보주(普州)사람이 도적을 쫓는 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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