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20. 엄, 수(嚴, 殊) 두 도인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59
 





120. 엄, 수(嚴, 殊) 두 도인에게 주는 글



참구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고, 보려면 꼭 실답게 보아야 하며, 작용하려면 꼭 실답게 작용해야 하고, 깨달으려면 반드시 실답게 깨달아야 한다. 만일 가는 털 만큼이라도 실답지 못하면 바로 헛된 데 떨어진다. 이 실제의 경지는 3세 모든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이며, 역대조사가 전하신 것이다. 오직 이 하나의 진실을 “실제의 경지를 밟음”이라 말하며, 반드시 첫 번에 크게 깨달아야 한다. 문턱을 오인하여 고정된 틀이나 설명을 만들며 방편경계, 관조와 작용, 취하고 버리는 알음알이를 세운다면 철저히 깨치지 못한다.



이것이 생사를 꿰뚫는 중요한 첩경이다. 죽는 날이 되어서 천이백 근의 짐을 모름지기 감당할 역량이 있어 걸머지고 갈 수 있어야만 홀연히 홀로 벗어나리라. 그러므로 무업국사께서 법문하시기를 “임종할 무렵에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생각을 없애지 못하고 털끝만큼이라도 알음알이가 남아 있으면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5음[五陰]에 끌려가리라”하였다.



옛사람은 생사문제를 크게 여겼다. 그래서 도를 찾고 스승을 찾아 결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말이나 배워 고인의 공안을 이해한 것으로 3백이고 5백이고 선문답을 하면서 그것을 깨달음으로 여겨서야 되겠는가. 총명하고 교활한 지혜는 모두가 도를 장애하는 근본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가만히 공적함을 두드려 심신을 놓아버려서, 토목이나 기왓조각 같이 되는 것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업의 뿌리가 되는 씨[業根種子]를 번뜩 뒤집어 잘못임을 알고, 불법 배우는 것을 독약에 중독된 것처럼 보아야 한다. 그런 뒤에 불법을 투철히 벗어나면 이것이 본분의 일을 체득한 것이다. 이는 작은 인연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참구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놓아버리고, 걸머지지 않아야만 경솔하게 다치지 않는다. 상류(上流)들은 투철하면 투철할수록 더욱 낮추어 세밀하고, 고명하면 고명할수록 더욱 감추어서,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데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움직여도 먼지조차 일지 않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을 놀래키지 않아서 담담히 편안하고 한가로이 항상 공경을 행해야만 비로소 보임(保任)을 할 수 있으며, 맞고 안맞는 모든 경계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뜻이 바뀌지 않는다. 달마스님은 이를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하였다.



부디 푹 익도록 실천하라. 그리하여 고금의 작용과 기연에 종횡으로 통달하여도 그것을 가슴에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그저 무심하여, 부딪치면 바로 변전(變轉)하고 누르면 바로 움직여, 얽매이지 않으면 수천만 사람 속에 있더라도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으리라. 이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기서 다시 마지막 한마디를 알아야 한다. 참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