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록(曹山錄)

시 중 66.

通達無我法者 2008. 2. 25. 14:23
 

시 중 66.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이렇게 법복을 입었으면 도리상 본분사(向上事)를 통달해

야 하니, 어정거려서는 안된다.

  만일 분명히 깨쳤다 해도 저 모든 성인을 자기 등뒤로 던져 버려야(轉) 자

유로워질 것이다.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설사 완전한 법(十成)을 배운다 해도

그들 등뒤에서 차수(叉手)해야 할 것이니, 무슨 큰 소리를 치겠느냐.

  자기를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온갖 잡된(녹重)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주인

공이 될 수 있다. 가령 진창에 처박힌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스님이 약산(藥山)스님에게 묻기를, '삼승교(三乘敎)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하자, '있지'하였다. '이미 있다면 달마스님은 무엇하러 오셨습니

까?' 하자 약산스님은 '까닭이 있어서 왔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

공이 되고 나서 자기를 던져버리는 그곳으로 귀결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경전에서는 말씀하시기를,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은 십겁(十劫)을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질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하

였는데, 여기서 겁(劫)이라는 말은 '막힌다'는 뜻이다. 생각컨데 '완전히 이루

다(十成)' 또는 '스미는 번뇌를 끊다' 하는 것은 온갖 길이 끊겼으나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고 앉아 탐착함을 <차례차례

깨달아 가면서 귀천을 분간하지 못함>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 총림을 보건대, 항상 이렇게 저렇게 의론하기를 좋아한다. 그래가지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지난일(向去事)을 늘어놓는 것일 뿐이

다. 듣지도 못했는가. 남전(南泉: 748∼834)스님이 '설사 너희들이 완전히 이

루었다 해도 내 한 가닥 길에 비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신 말씀을.

  이쯤 되어서는 정말 치밀해야만 명백하고 자재하리라. 천당.지옥.아귀.축생

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변함없으면 원래 옛사람이나 옛길을 가지 않을 것이

다. 여기서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막히고, 벗어난다면 꺼릴 것이 없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윤회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요즈음 사람들은 청정한 경계를 말하며 지난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가장 난치병이다. 잡된 세속사는 오히려 가벼우나 청정함은 중병이니, 예컨

대 부처에 맛들리고 조사에 맛들리면 모두 막힘과 집착이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파계이다' 하셨으니,

맛을 챙긴다면 재(齋)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맛이라고 하겠느냐.

부처 맛, 조사 맛을 말한다.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면 바로 파계이다. 여

기서 재를 파하고 계율을 파한다 함은 바로 지금 3갈마(三?磨)의 경우에 벌

써 파괴해 버린 것이다.

  거칠고 무거운 탐.진.치는 끊기 어렵다 해도 도리어 가벼우나, 함이 없고

할일 없는 청정한 이것이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중병인 것이다. 조사도 이것

때문에 세상에 나오셨으며 유독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당장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아라. 검둥이 종(曺)과 흰 암소가 수행하는 편

이 빠를 것이니, 그들은 선(禪)이다 도(道)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

희들은 부처니 조사니 나아가서는 보리열반까지 갖가지로 치달려 구한다. 그

러니 언제나 쉬고 결판을 보겠느냐.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마음이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한 검둥이 종이나 흰 암소만도 못한 것이다. 그들은 부처도

모르고 조사도 모르며 보리열반과 선악인과까지도 모른다. 배고프면 풀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이럴 수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까 근심할 것

도 없다.

  '헤아려서는 이루지 못한다' 했던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므로 있는 줄

(有) 알아야만 축생도 끌어올 수 있다. 이 방편을 터득해야 좀 낫다 하겠다.

  미륵보살과 아촉불과 모든 묘희세계(妙喜世界) 등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

향상인(向上人)을 부끄러움과 게으름이 없는 보살이라 하나 그들 역시 또 변

역생사(變易生死)*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게으를까 두려운데 본





분사에 있어서 어찌해야 하겠느냐. 매우 치밀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

씩 앉을 자리가 있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온다 해도 그것을 어찌하지는 못한

다. 이렇게 체득해서 닦아가야지 재빠른 이익을 쫓아서는 안된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당장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

며, 삼악도(三惡塗)인 지옥과 육도(六道)에 떨어진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다.

이렇게 아무 작용할 틈이 없으나 그렇다고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주인공이 되어 주어야 하리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변

역생사를 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되어 주지 못하면 변역생사를 하게 된다.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 하신 영가(永嘉)스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더냐.

  '무엇이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는 것입니까?'

  '모두 다이다'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있음을 알면 된다. 면하여 무얼 하겠느냐. 보리.열반.번뇌.무명 등도 전혀

벗어날 필요가 없으며 잡된 세간사도 있음을 알면 될 뿐, 벗어날 필요가 없

으니 벗어나면 변역생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

며,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등의 재앙은 적은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변역생사를 하기 때문이다.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려거든 그저 부딪치는대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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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생사(變易生死):나고 죽으면서 몸을 바꾸는 범부의 분단생사(分段生死)에 상 

     대되는 개념으로서, 미세망상이 남아 있는 보살의 생사를 일컬음.

  * 증도가에 나오는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 하면(豁達空撥因果)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茫茫蕩蕩招殃禍)"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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