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산 록(祖堂集)
행 록
동산(洞山)스님의 법을 이었고, 항주(抗州)에 살았다. 법명(謂)은 본적(本
寂)이며, 천주(泉州) 포전현(蒲田縣) 사람으로 속성은 황씨다. 어릴 적부터 9
경(九經)을 익혀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1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
의 허락이 나서 복당현(福唐縣) 영석산(靈石山)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2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사가 계 받을 것을 허락하였는데 거동과 몸가짐이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 같았다. 그 길로 행각을 나서서 처음으로 동산스님 법회를
찾으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아무개라고 대답하니, 동산스님이 다시 말했다.
"본분(向上)에서 다시 말해 보아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가?"
"아무개라고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동산스님이 근기를 깊이 인정하였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몇해
만에 비밀한 방에서 종지를 이어받았다.
어느날 동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없는 곳이라면서 어떻게 감이 있겠는가?"
"가더라도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부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노닐었는데 도반될 만한 사람
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깊이 숨어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 않더니, 교화할 인
연이 이르자 처음에는 조산(曹山)에 살다가 나중에는 하옥(荷玉)으로 옮겼다.
종릉(鍾陵) 대왕이 스님의 높은 덕망을 흠모하여 두세 번 사신을 보내 청
했으나 스님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세번째 사신을 보낼 때,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조산대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면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사신이 왕명을 받들고 산에 와서 슬피 울며 말했다.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일체중생을 구제해 주옵소서. 스님께서 이번에도 왕
명에 따라 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잿가루가 됩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신께 후환이 없도록 보증하기 위해 가실 때 옛 어른의 게송 한 수를
전하리다."
그리고는 다음의 시를 보냈다.
꺾여진 고목나무 푸른 숲에 끼어 있어
몇 차례 봄을 만났건만 그 마음 안 변했네
나무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이름난 목수가 무얼 애써 찾겠는가.
殘枯木倚靑林 幾度逢春不變心
蕉客見之猶不顧 人那更苦追尋
사신이 돌아와서 게송을 바치니, 왕이 보고 멀리 조산 마루를 향해 절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제자는 금생에 영영 조산대사를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곳의 법석(法席)에서 20년 동안, 여름 겨울없이 대중이 항
상 천 2, 3백명이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