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당
스님께서 항시 상당하면 대중에게 이렇게 법문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제방에는 말로
선사된 이가 많아서 여러분의 귓속이 모두 가득할 것이다. 온갖 법을 의지하
지도 않고 접하지도 않고 다만 그렇게 체득하면, 그들의 차별된 알음알이가
그대들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아득한 천지에 온갖 일이 삼(麻)같이 갈대
(초)같이 가루(粉)같이 칡덩굴(葛)같이 많은데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며 조사께서 세상에 나오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 오
직 끝까지 체험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천만가지 경론으로 도를 이룬 이가 자유롭지 못하고 시종(始終)
을 초월치 못했음을 보았을텐데, 대체로 자기 일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밝히면 저 모든 일을 굴려 그대 자신의 살림을 삼게 되겠지만 만
일 자기 일을 밝히지 못하면 그대들이 여러 성인에게 연(緣)이 되어주고, 여
러 성인이 그대에게 경계(境)가 되어 경계와 인연이 서로 어울려도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몸소 완전히 체득하지 못
하면 저 모든 일을 굴려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며, 만일 완전히 체득하여 묘
연히 얻으면 모든 일을 굴려 등 뒤로 던져 두고 하인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본체는 미묘한 곳에 있으니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 하셨다. 이 경지에 이르면 귀천(貴賤)도 없고 친소(親疎)
도 없어 마치 큰 부잣집 금고지기(守錢奴)가 물건을 쓸 때 동과 서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경지에 이르면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청탁
(淸濁)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만일 낮은 사람이 나서서 주인보다 더
좋게 옷을 입고 단장했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데야 어쩌랴. 내가 여러
분께 말해주겠다. 향해 가는 말(向去語: 向上語)은 맑고 깨끗하나 일 위의 말
(事上語: 向下語)은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니, 무엇을 일 위의 말이라 하겠
는가? 여기서는 격식을 벗어난 큰 사람을 가려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