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난리가 났는데도 / 자득 혜휘(自得慧暉)선사
자득 휘(自得慧暉:1097~1182)스님이 장노 조조(長蘆祖照:1057~1124)스님의 회하에 있을 무렵, 난리가 일어나 대중이 모두 흩어졌는데 스님과 종백두(宗白頭:1085~1153)스님만이 꼼짝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스님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선이란 본래 생사와 대적하는 것이니 어찌 이러한 난리로 도망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나의 몸은 허약하니 피난을 간다 해도 도중에 잡힐 것이 아닌가 하였다. 폭도가 쳐들어와 보니 대중들은 모두 떠나갔는데 오직 혜휘스님만이 법당 안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기에, 다투어가며 화살로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혜휘스님은 고요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화살 한 개가 스님의 소맷자락을 뚫고 궤짝에 맞았다. 이로부터 스님은 사지를 덜덜 떠는 병을 얻게 되었다. 종백두는 창고에 앉아 있었는데 도적이 그를 발견하고 결박지어 쏘아 죽이려 하자 한 직세승(直歲僧:회계를 맡아보는 스님)이 곁에 있다가 그들 앞으로 다가서며, 자기를 대신 죽여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니, 도적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저 사람과 어떤 관계냐?"
"이 스님은 참선을 해 마친 분이다. 뒤에 큰 선지식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실 터이지만 나는 참선을 하지 못하였으니 죽는다 하여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대신하고자 한다."
도적들은 그의 말을 기특하게 생각하여 두 사람 모두 풀어 주었다.
후일 종백두가 명주(明州)취암사(翠巖寺)의 주지로 있을 때 그의 도가 크게 떨치게 되었다. 지난 날 목숨을 대신하겠다던 자도 그의 회하에 있었는데 종백두는 항상 그 사람이 자신을 다시 낳아 준 부모라고 하였다. 진실로 참선하는 이에게 바른 발심만 있다면 반야에 어찌 영험이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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