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미치광이 중 분암주(分菴主)의 하안거 결제법문
검문(劍門) 분 암주(菴主)는 민(閩)사람이다. 어린 나이부터 도에 대하여 스스로 깨친 바 있어 마침내 삭발하고 고향을 떠나버리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친중이라 하였지만 분스님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나암 정수(懶菴鼎需)스님을, 그 후엔 쌍경사 묘희스님을 찾아갔었는데 묘희스님은 그가 미쳤다는 말을 듣고, 끝내 참당(參堂)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분암주는 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전당(錢塘)가에 이르러 배를 빌려 절강정(浙江亭)가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리며, "내, 분주히 오령(五嶺)을 넘어 묘희스님을 찾아갔었지만 대중 속에도 들어가지 못함은 전생에 반야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데 뜻밖에,
"시랑(侍郞)행차요!"하는 수행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여기서 활짝 크게 깨치고 송을 지었다.
몇 해 동안 이 일이 가슴에 걸려
여러 총림 물어봐도 눈뜨지 못했더니
오늘에야 갑자기 창자가 터져
강가에 울려오는 시랑행차시오 하는 소리
幾年箇事挂胸懷 問盡諸方眼不開
今日肝腸忽然破 一聲江上侍郞來
그 길로 양서암(洋嶼菴)으로 돌아가 나암(懶菴)스님에게 귀의하니, 나암스님은 그의 깨침을 인가하였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갑자기 그곳을 떠나가려 하자 나암스님이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강머리 세찬 바람 물결이 나부끼는데
남북의 많은 사람 만나도 반갑지 않더니만
오로지 안분선자 뛰어난 수단 지녀
힘들이지 않고 과거급제 하였네.
江頭風急浪華飛 南北相逢不展眉
獨有分禪英悛手 等閑尊得錦標歸
그 후 칠민(七閩)땅에서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때로는 술집에 들어가고 때로는 고기전에 들어가니, 아무도 몰랐으나 함께 참례하던 목암 영(木菴永)스님만은 만날 때마다 반드시 스승처럼 그를 섬겼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대중법문을 하였다.
"이 한 돼기 밭을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아라.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당장에 이를 깨치면 이 안분상좌를 꼼짝 못하게 하겠지만 만일 머뭇거리거나 헤아려본다면 천리만리 날아가는 흰구름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갑자기 주장자를 뽑아들고 후려치면서 대중을 모두 쫓아버렸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15일 이전엔 하늘의 별들이 모두 북극성을 향하여 돌고 15일 이후엔 이 세상의 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간다. 이전이니 이후이니 하는 것을 뽑아버리니, 가는 곳마다 지방의 말씨가 다르더구나."
이어 손가락을 꼽으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하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형제들이여, 말해 보라. 오늘이 몇 일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이 가게에서는 푼돈갖고 외상줄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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