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자칭 `시골뜨기 중' / 설소 법일(雪巢法一)스님
설소 법일(雪敖法一:1084~1158)스님은 스스로를 `시골뜨기 중(村僧)'이라 하였으며 초당 선청(草堂善淸)스님의 법제자이다. 오랫동안 평전사(平田寺)의 주지를 지냈고 뒤에 장노사(長蘆寺)의 주지가 되어달라는 간곡한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다가 여회 교(如晦皎)스님의 서신 한 장을 받고서야 부임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절은 결코 작은 절이 아니고 `시골뜨기 중' 또한 그저 그런 중이 아닙니다. 당우가 죽 이어져 있고 게다가 경치 좋고 우수한 인재가 있는 곳을 얻으려 하십니까? 생철면피(生鐵面皮)라는 아무 스님은 명성이 하늘까지 뻗칩니다.
그는 온누리를 주물러 하나의 사원을 만든다 하여도 전부가 아니라 하고 항하수 모래로 납승을 만들고도 할(喝)한번 하지 않습니다. 자, 광화(光火)보살의 얼굴을 보십시오. 또한 타거나한(跥距羅漢)을 후려쳐 보십시오.
이곳에 오시어 밑없는 배를 버티어 주시고 갈대꽃 숲(절이름 長蘆寺)에 길고 긴 물결을 일으켜, 향상구(向上句)를 들고서 금지옥엽 귀하신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어줌이 좋을 것입니다."
설소스님은 그곳에서 일년 동안 주지하다가 그 이듬해 다시 만년사로 돌아온 후 얼마되지 않아 관음원(觀音院)에서 입적하였는데 입적할 무렵 미리 널 속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채우면서 게를 읊었다.
올해 나이 일흔다섯
돌아와 암주가 되었으니
안녕하소서, 관세음보살!
진흙뱀이 돌범을 삼켰도다.
今年七十五 歸作菴中主
珍重觀世音 泥蛇呑石虎
스님이 평전(平田)땅에 있을 무렵 대중은 항상 5백명쯤 되었다. 그때 강서 늑담사에 한 화주가 나타나 대적탑(大寂塔:마조스님의 탑)을 수리하자 대중들은 모두 송을 지어 이를 찬양하였다. 그당시 한 좌주(座主)가 처음 선종으로 전향하여 대중으로 들어왔다가 이를 계기로 게송 한 수를 지었다.
강서 땅 늙은 스님에게 이르노니
그날부터 날씨가 무덥고 비바람이 불어오리라
자손들의 헤아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음 녹듯 기왓장 무너지듯 할 때를 보아야 하리
寄語江西老古錐 從他日炙與風吹
兒孫不是無料理 要見氷消瓦解時
또한 `동짓날에(冬日卽事)'라는 시를 읊었다.
모진 삭풍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
바위 앞 고목가지에 불어온다
깊은 밤 화로 가득히 불 주시니
도리어 내 마음 게을러집니다.
朔風也解知人意 吹落巖前古樹枝
惠我一爐深夜火 轉敎心性懶趨時
설소스님은 이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납자들이 30년 동안 이곳 대중의 밥을 먹었지만 이런 시를 짓지 못했다. 뒤에 그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이다."
뒷날 과연 스님의 말대로 그 좌주(座主)는 동액사(東液寺)의 주지가 되어 남악 천태(天台)의 가르침을 크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가 신조(神照)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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