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장산 찬원(蔣山贊元)스님의 법제자들
장산 원(蔣山贊元:?~1086)스님은 자명(慈明:石霜楚圓)스님의 법제자이다. 찬원스님은 후일 설두 법아(雪竇法雅)스님에게, 법아스님은 자각 선인(慈覺善印)스님에게 법을 전하였고, 혼융 연(混融然)스님은 실로 이 법통을 이었다. 그는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 금릉 천희사(天禧寺)의 주지로 있었다. 당시 치선 원묘(癡禪元妙)스님은 보령사(保寧寺)에, 대선 요명(大禪了明)스님은 장산사(蔣山寺)절의 주지로 있었는데 요명스님은 연스님이 황룡(黃龍慧南)․ 양기(楊岐方會)스님의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를 박대하였다.
한번은 공식석상에서 서로 언쟁을 하였다. 연스님은 논변이 민첩하였으므로 요명스님이 큰 곤경을 겪게 되었는데 치선스님의 도움으로 화해하였다. 연스님의 도량은 여느 사람보다도 뛰어났으나, 너무 일찍 세간에 나와 여러 총림의 문호를 두루 다니지 못하여 종안(宗眼)이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총림에서는 그를 박대하는 이가 많았다.
후일 그는 남화산(南華山)에 주지다가 오양산(五晳山)에서 입적하였다. 임종시 깨끗히 해탈하였고 그 고을 사람들이 침향목(沈香木)을 쌓아 다비를 하였는데 적지않은 기적이 있었다.
연스님은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스승 자각(慈覺)스님을 위하여 지은 수준높은 제문이다.
건염 3년(1129),
내 갑자기 미친병으로
복두건 눌러 쓰고
허리띠 잡아 매고
깊은 밤 스승의 뜨락에서 도적질하다가
스승에게 붙잡혔지만
이미 아무 물건도 없어
공연히 3배만 올렸네
그 후로 물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한 마음 적지 않구나
누군가 혹 스승을 욕하기를
`늙어 중얼거리지 못하고
전혀 깨친 바 없다'고 하면
나는 곧 머리 들고
하늘을 우러러 의심한다
누군가 스승을 칭찬하기를
`그의 도는 부처를 뛰어넘고
도량은 바다보다도 드넓다'고 하면
나는 곧 지팡이 쳐들고
그의 머리를 갈겨 부순다
이런가 저런가 하며
잘못 안 사람 많구나!
삼가 박주(薄酒)한잔을 올리오니
스님이여! 크게 한번 웃으소서.
스님의 제자 대기(大驥)스님은 순희(淳熙)연간에 구주(衢州) 영요사(靈曜寺)에 주지를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마침 부역법(賦役法)을 시행하여 이절(二浙)과 강회(江淮)및 처주(處州)지방에 모두 차출을 명하였는데 대기스님은 구주(衢州)․무주(婺州)․처주(處州)세 고을의 비구 비구니와 도사(道士)를 모두 이끌고 조정에 찾아가 이를 면제받도록 하였다. 오늘날의 모든 승려와 도사들이 국가의 부역에 나가지 않고 평안을 얻게 된 것은 대기스님의 힘이었다. 뒷날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은 중이라면 마땅히 그 연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대기스님은 후일 천태산 평전사(平田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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