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어서화(東語西話)

38. 공용없는 삼매는 무엇인가 ?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20:23
38. 공용없는 삼매는 무엇인가 ?


도는 방향이 없으므로 가더라도 도달할 수 없고
형체가 없으므로 보려 해도 볼 수 없으며,
도는 인위적인 조작[作爲]이 없으므로 이룰 수 없고
기미[機]가 없으므로 지혜로운 사람도 헤아릴 수 없다.

3교(三敎) · 9류(九流) · 제자백가[百氏諸子]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도에 대해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도가 과연 이와 같다면 누구라서 그것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총명하고 지혜로운 인재는 곧 근원으로 향해서
기이하고 특별한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옛날 훌륭하게 도를 닦은 분으로서 임제(臨濟;?∼867)스님의 경우는
황벽(黃 ; ∼ )스님께 불법의 대의를 묻기만 하면 방망이를 맞았다.
방망이로 때리는 것 외에는 끝내 말씀이 없었다.
또 자명(慈明;987∼1040)스님이 분양(汾陽;947∼1024)스님에게 물으면
꾸짖고 비웃었을 뿐, 이른바 향상기(向上機)니 말후구(末後句)니 하는 말은
애초에 들어보지도 못하였다.

그런 뒤 의로(義路)가 끊어진 상태에서 오랫동안 가슴 속에 깊이 새겨
결단하려 하나 결단하지 못했던 의심을
하루 아침에 활연히 벗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붕새가 회오리 바람을 치듯,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은 듯,
번개가 치듯, 우뢰가 진동하듯 말과 글을 토해내는데
독(毒)이 있는 벌레를 입술에 대지 못하듯 하며,
철벽처럼 조금도 기어오를 수 없는 듯하며,
허공에 흘러가는 달이 곳곳에 빛나는 듯하며,
나무가지에 부는 바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취가 끊긴 듯하다.
한편 네모난 걸상에서 한결같이 평상(平常)하기도 하며,
기침하고 침 뱉고 팔 흔드는 것까지도
이 도와 입술이 합하듯 섞여 있지 않는 것이 없다.

이윽고 그 집안의 깊숙한 도를 깨닫고 문전을 나선 인재들은
낱낱이 6진을 뽑고 세속을 단절하여
일반 무리보다 뛰어나 대방(大方)에 활보하면서
눈으로는 은하수를 보는 듯하였다.
불조성현이라 해도 함께 할 의도가 없는데
더구나 명예 · 이익 · 5욕(五欲) · 은애(恩肯)의 진로의 경계에
머리 숙이고 구속을 받으려 하겠는가?
선배로서 이와 같은 체재를 자부한다 해도
다른 사람보다 특이한 견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세상을 뒤덮을만한 기이한 수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결같이 도를 위하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서리와 얼음이 불 그림자만 바라보아도 녹아버리는 것과 같고,
티끌이 작은 바람에도 날려버리는 것과 같았다.
도를 체득하려는 생각이 1푼 견고하고 촘촘해지면
그에 따라 업도 자연히 1푼 소멸할 뿐이다.
내가 도를 향하는 마음이 투철하면
이른바 알음알이 허상으로 전도된 애증의 사념은 마치
바람을 만난 티끌이나 불 가까이에 있는 눈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게 된다.
어찌 알음알이의 허망만 그렇게 되겠으리오?
나아가 성인의 도조차도 이 마음속으로 들어오질 못한다.
이를 이름하여 공용(功用)없는 삼매(三昧)라 한다.
삼매 가운데는 생사와 열반이 모두 붙어 있을 틈이 없다.

요즈음 사람들도 이 삼매 속에 있지만,
도를 향하는 생각이 진실하고 간절하지 못하여
걸핏하면 알음알이 허상을 만난다.
그 결과 주관과 객관이라는 2원론에 결박되어서 불법을 알면 알수록
업식(業識)이 더 늘어나며, 도에 밝을수록 무명(無明)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지견(知見)의 바람이 부채질 해
생사윤회의 바닷 속으로 들어가서 유전을 달게 받아들인다.
어찌 뜻이 있는 인재로서 이와 같이 하겠는가?
이는 마치 눈 먼 사람이 보배가 있는 곳에 빠져서
오히려 보배에 걸려 몸을 다쳐 목숨마저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