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칙 노방의 잘 내리는 눈〔老龐好雪〕
(수시)
혼자서 제창하고 홀로 희롱하여도 흙탕물을 끼얹는 것이요, 북치고 노래하기를 혼자서 모두 하더라도 은산철벽(銀山鐵壁)이다. 이리저리 궁리했다가는 해골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며, 찾으며 생각하면 캄캄한 산 아래 떨어지리라. 밝고 빛나는 태양은 하늘에 솟아 있고, 소슬한 맑은 바람은 온 누리에 가득하다. 말해보라, 옛사람에게도 잘못된 곳이 있었는가를. 거량해보자.
(본칙)
방거사(龐居士)가 약산(藥山)스님을 하직하자,
-이 늙은이가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약산이 열 명의 선객(禪客)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그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 이것은 무슨 경계일까. 모름지기 근원을 아는 납승이어야 할 수 있 을 것이다.
거사는 허공에 날리는 눈〔雪〕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멋진 눈!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바람도 없는데 괜히 풍랑을 일으키는구나. 손가락 끝에 눈동자가 있다. 이 늙은이 말 속에 공감 할 만한 게 있구나.
이때에 선객 모두가 곁에 있다가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맞혔군. 말에 끌어오는구나. 그럼 그렇지. 낚시에 걸려들었군.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제대로 한 수 놨다. 그럼 그렇지, 도적이 집안을 망쳤군.
선객 모두가 말하였다.
“거사는 거칠게 굴지 마시오.”
-널 속에서 눈알을 부릅뜨는군.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
-두 번재 더러운 물을 끼얹어버렸다. 꼭 염라대왕뿐이겠는가? 산승이라도 여기에서는 용서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친 마음을 고치지 않은 걸 보니 다시 몽둥이를 맞아야겠구나. 이 스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 아채질 못하는군.
거사가 또다시 따귀를 친 후에 말하였다.
-과연 설상가상(雪上加霜)이로구나. 몽둥이를 맞았으니 실토를 하시지.
“눈은 떴어도 장님 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같다.”
-다시 둘 사이를 화합시켜 주는 말이 있었구나. 그에게 판결문을 읽어주는군.
설두스님은 다르게 논평하였다.
“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서 바로 쳤어야지.”
-옳기는 옳지만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구나. 적잖게 허물이 있구나. 그렇지만 화살 끝이 서 로 맞부딪치는 것과 같은 기묘함을 살펴보아야 한다. 귀신 굴 속에 떨어져버린 것을 어찌하랴.
(평창)
방거사는 마조스님과 석두스님의 두 처소를 참방한 후 송을 하였다.
처음 석두스님을 뵙고 대뜸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으니,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두스님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약간 깨친 바 있었다. 그래서 송을 지었다.
날마다 하는 일이 다른 것이 없어
나 스스로 마주칠 뿐이네.
사물마다 취하고 버림이 없고
곳곳마다 펴고 오무릴 것이 없나니.
붉은 빛 자주빛을 뉘라서 분별하리
청산에 한 점 티끌마저도 끊겼노라.
신통과 묘용이란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구나
그 뒤에 마조스님을 참방하고 또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셨을 때 그대에게 말해주겠네.”
거사는 크게 깨치고 송을 하였다.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와서
모두 하염없는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가리라.
그는 작가 선지식이었기에 많은 총림에서 서로 우러러 바라고, 이르는 곳마다 다투어 칭찬하였다.
약산에 이르러 머문 지 오래되어 마침내 약산스님을 하직하니, 약산스님은 그를 존경하여 선객 열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전송하도록 하였다. 이때 마침 눈이 내리자 거사는 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멋진 눈!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어 선객들이 일제히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는 대뜸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는 선객들이 이미 법령을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사가 반쯤 시행한 것이다. 비록 지금 법령을 시행하긴 했지만 모든 선객이 이처럼 응수한 것은 (설두스님의) 의도를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기봉을 방거사와 다르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사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그의 기합소리에 얼어서 그의 보살핌〔#101〕
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사는 그의 따귀를 후려친 후 다시 말하였다.
“눈을 뜨더라도 장님처럼 하고 입을 벌리더라도 벙어리처럼 한다.”
설두스님은 이 말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논평을 했다.
“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 바로 후려쳤어야지.”
설두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방거사가 한 질문의 핵심을 저버리지 않고저 함이었으나, 기봉이 늦고 말았다. 경장주(慶藏主)는 말하기를, “거사의 기봉은 번갯불 치듯 하는데 눈덩이를 뭉치려고 한다면 어느 시절에 되겠는가! 말하자마자 바로 조처를 취해야 하고, 말하자마자 바로 쳐버렸어야 끊어버릴 수 있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그가 때렸던 행위를 송하였다.
(송)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제이의 기봉에 떨어진 것을 어쩌랴. 수고롭게 말할 것 없다. (번뇌의 풀더미가) 머리 위로 질펀하고 발 아래도 질펀하다.
방노사의 기관(機關)은 잡을 수 없어라.
-거의 사람들이 모른다. 그렇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천상․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이 무슨 소식일까? 설두스님은 알까?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하여라.
-화살 끝이 서로 마주치는 듯 (절묘하다). 눈이 있으나 봉사 같고 입이 있으나 벙어리 같구나.
씻은 듯 끊김이여,
-무엇일까? 어디에서 늙은 방거사와 설두스님을 볼 수 있을까?
파란 눈 달마스님이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우리.
-달마스님이 나오면 뭐라고 말할까?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설두)스님 무슨 말을 하십니 까?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평창)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방노인의 기관을 잡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은 거사의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눈〔雪〕으로써 평등 무차별의 세계를 밝힌 것이다. 설두스님의 뜻은 “당시 눈을 뭉쳐 던졌더라면, 거사가 제 아무리 수완〔機關〕이 있다 하더라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가 따귀를 친 것을 칭찬했지만 손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천상․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하여라”하였는데, 눈〔眼〕속에도 눈〔雪〕, 귓속에도 눈〔雪〕이라는 것이니, 이는 평등한 상태에 머문 것이다. 이를 ‘보현경계(普賢境界)의 절대평등’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한 덩어리가 됐다’라고도 한다.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곧바로 온 천하에 실오라기만큼 허물이 없다 해도 오히려 외물에 휘둘리는 것이며, 한 경계도 보지 않았다 해도 겨우 반쯤 제창한 것이다. 온전히 제창하려 한다면 반드시 끝없이 초월하는 길〔向上一路〕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이르러선 눈앞에 대용(大用)이 나타나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남의 명령에 놀아나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지, 사구를 참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구절의 깨달은 말일지라도 만겁토록 속박하는 말뚝이로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 했다
설두스님이 이쯤에 노래를 마치고 다시 기틀을 돌려, “씻은 듯 끊김이여, 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우리”하였으니, 달마스님이라도 분별하기 어렵다는데 산승더러 무얼 말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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