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36. 마음이 부처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8:26
 

마음이 부처다

 

14-9-36 百門義海 云. 發菩提者 今了達一切衆生及塵毛等無性之理. 以成佛菩提智故 所以 於佛菩提身中 見一切衆生成等正覺. 又 衆生及塵毛等 全以佛菩提之理成衆生故 所以 於衆生菩提中 見佛修菩提行. 是故 佛是衆生之佛 衆生卽佛之衆生. 縱有開合 終無差別. 如是見者 名菩提 心起同體大悲 敎化衆生也. 又 策林問云1) 衆生爲迷 諸佛爲悟 體雖是一 約用有差. 若以衆生通佛 佛亦合迷 若以佛通衆生 衆生合悟.



ꡔ백문의해ꡕ에서 “깨달음을 발한다는 것은 지금 일체중생에게 결정된 성품이 없다는 이치를 요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 깨달음의 지혜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일체중생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또 일체중생도 온전히 부처님 깨달음의 이치로써 중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깨달음 가운데에 깨달음을 닦아 나가는 부처님의 행을 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서 부처님은 중생 속의 부처님이며, 중생은 부처님 가운데의 중생이다. 비록 중생과 부처님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거나 하나로 모을지라도 끝내 차별이 없다. 이와 같이 봄을 깨달음이라 하니, 마음에서 중생과 함께 하는 대자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책림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문 : 중생은 미혹하고 부처님은 깨달아서 바탕이 비록 하나라도, 쓰여지는 데에 차별이 있습니다. 만약 중생으로서 부처님과 통한다면 부처님 또한 미혹한 것이며, 부처님으로서 중생과 통한다면 중생 또한 깨달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答 恆以非衆生爲衆生 亦以非佛爲佛. 不礙存而恆奪 不妨壞而常成. 隨緣且立衆生之名 豈有衆生可得. 約體權施法身之號 寧有諸佛可求. 莫不妄徹眞原 居一相而恆有 眞該妄末 入五道而常空. 情談則二界難通 智說乃一如易就. 然後 雙非雙是 卽互壞互成. 見諸佛於衆生身 觀衆生於佛體. 仰山和尙問潙山和尙云 眞佛住何處.



답 : 항상 중생이 아닌 것으로 중생을 삼고, 또한 부처가 아닌 것으로 부처를 삼는 다. 있음에 구애되지 않고 항상 그 근거를 빼앗으며, 허무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항상 만들어 나간다.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중생이란 이름을 세웠지만 어찌 얻을 만한 중생의 실체가 있겠는가. 바탕을 기준하여 방편으로 법신이란 이름을 세웠지만 어찌 구할 만한 부처님의 실체가 있겠는가. 허망한 것이 진실의 근원에 확철하지 않음이 없으니, 하나의 모습으로 있으면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참다운 진실이 허망함의 세세한 부분까지 껴안고 있으니, 오도(五道)에 들어가면서도 항상 공()하다. 중생의 알음알이로서 이야기하면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가 통하기 어려우나, 부처님의 지혜로서 설하면 하나의 여여한 세계로 쉽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두 가지 다 틀리거나 옳기도 하니, 곧 서로 파괴하면서 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을 중생의 몸에서 보며, 모든 중생을 부처님의 몸에서 관()하는 것이다.


앙산 스님(807~883) 위산 스님(771~853)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문 : 참다운 부처님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

潙山云 以思無思之妙 反思靈焰之無窮.2) 思盡還原 性相常住 事理不二 眞佛如如. 斯則 無住無離 能見眞佛 履平等道矣. 故云 六道之道 離善之惡 離惡之善 二乘之道 離漏之無漏 菩薩之道 離邊之中. 諸佛之道 無離無至 何以故 一切諸法卽是佛道故. 所以 先德云 夫大道唯心 卽心是佛. 只依一心而修 卽是根本之智 亦是無分別智 卽能分別無窮 自具一切智故 不同起心遍計.



답 : 생각으로 사량할 수 없는 묘()한 자리로써 신령스런 지혜의 불꽃이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이 다하여 근원에 돌아가면 성()과 상()이 상주하여 사()와 이()가 둘이 아니면서 참다운 부처님이 여여한 것이다. 이러한즉 머물거나 떠날 것도 없으면서 참다운 부처님을 볼 수 있으니 평등한 도에 나아간다.

그러므로 육도(六道)의 도는 선을 떠나 악으로 가거나 악을 떠나 선으로 가는 것이며, 이승(二乘)의 도는 유루를 떠나 무루로 가는 것이며, 보살의 도는 변견(邊見)을 떠나 중도(中道)로 간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도는 떠남도 없고 도달할 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 자체가 부처님의 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스님은 “대도(大道)가 오직 마음이니 마음 자체가 부처님이다”라고 하였다. 단지 하나의 마음에 의지하여 닦는 그 자체가 근본 지혜이며, 또한 분별이 없는 지혜로서 한량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일체를 아는 지혜를 구족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일으켜서 두루 계교 사량하는 것과는 다르다.

故知 凡有心者 悉皆成佛 如今行是佛行 坐是佛坐 語是佛語 黙是佛黙. 所以云 阿鼻依正 常處極聖之自心 諸佛法身 不離下凡之一念. 此非分得 可謂全收. 以不信故 決定爲凡 以明了故 舊來成佛. 然成佛之義 約性虛玄3) 隨相對機 卽有多種.



그러므로 무릇 마음이 있으면 모두 다 성불하여 지금의 행이 부처님의 행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앉아도 부처님이 앉고, 말해도 부처님이 말하며, 침묵해도 부처님이 침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간지옥의 국토와 중생이 항상 지극한 성인의 자기 마음에 거주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하열한 범부의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전체로 거두어진다고 할 만하겠다.

이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범부가 되었으며, 이것을 명료하게 알았기 때문에 옛부터 성불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되는 이치는 참성품의 입장에서 허허롭고 깊은 도리이나, 중생의 모습을 따르고 여러 근기에 맞추다 보면 여러 종류가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