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82. 도를 잃고서 덕이

通達無我法者 2008. 3. 3. 21:47
 

도를 잃고서 덕이

 

25-12-82 若實親省 現證自宗 尙無能證之智心 及所證之妙理 豈況更存 能知能解 有得有趣之妄想乎. 近代 或有濫參禪門 不得旨者 相承不信卽心卽佛之言 判爲是敎乘所說 未得幽玄. 我自有宗門向上事在 唯重非心非佛之說 並是指鹿作馬. 期悟遭迷 執影是眞 以病爲法. 只要門風緊峻 問答尖新 發狂慧而守癡禪 迷方便而違宗旨. 立格量而據道理 猶入假之金 存規矩而定邊隅 如添水之乳.



만약 진실로 자기의 마음을 친히 살펴 본래의 종지를 증득하면 오히려 증득하는 지혜의 마음과 증득되는 오묘한 이치도 없는데, 어찌 하물며 다시금 알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하여 얻거나 취할 것이 있다는 망상이 있겠는가. 요사이 혹 외람되게 선문에 동참하나 종지를 얻지 못한 자가 ‘마음 자체가 곧 부처’라는 말을 믿지 못하고, 이 말은 교가에서 설해진 것으로 아직 깊고 오묘한 뜻을 얻지 못한 내용이라고 판정한다. 그리고 스스로 나에게는 종문의 으뜸가는 공부가 있다고 하면서 오로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는 말만 중요시하니, 이 모든 것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기약하나 미혹을 만나며 그림자를 집착하여 진짜라 하니, 병통으로 법을 삼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만 선문의 가풍이 준엄하거나 긴장되고 문답이 날카롭고 참신하기만을 요구하니, 미친 알음알이를 내어서 어리석은 선을 지키는 것이며 방편에 미혹하여 종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일정한 틀을 세워서 도의 이치를 삼아 근거 삼으니 마치 가짜가 섞인 금과 같으며, 잣대 자체에 의존하여 잣대의 변두리와 모퉁이를 정하니 마치 물을 탄 우유와도 같다.


一向於言語上取辦 意根下依通 都爲能所未亡 名相不破. 若實見性 心境自虛 匿跡韜光 潛行密用. 是以 全不悟道 唯逐妄輪迴 起法我見 而輕忽上流 恃錯知解 而摧殘未學 毁金口所說之正典 撥圓因助道之修行 斥二乘之菩提 滅人天之善種. 但欲作探玄上士 傚無礙無修 不知返墮無知成空見外道. 唯觀影跡 莫究圓常 積見不休 徒自疲極.



언제나 언어에서 판단을 취하고 생각에 의지하여 통하고자 하는 이들 모든 것은 능()과 소()의 상대적 경계가 사라지지 않았고 이름과 모습을 타파하지 못하였다. 만약 진실로 참성품을 보았다면 마음과 경계가 스스로 비어 자취를 숨기고 남모르게 비밀스런 작용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도를 깨치지 않았다면 오직 허망을 쫓아 윤회하면서 내가 잘났다는 견해를 일으켜 공부 잘하는 수행자를 경멸하거나 홀대하고, 잘못된 알음알이를 믿고서 아직 바른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후학들의 기를 꺾으며, 부처님이 설하신 바른 가르침을 훼손하면서 원만한 깨달음의 원인으로 불도(佛道)에 도움이 되는 수행을 배제하고, 이승의 깨달음을 배척하며, 인천(人天)의 착한 종자를 멸하는 것이다.

단지 깊은 도리를 찾으려는 사람이 되고자 걸릴 것이 없고 닦을 것이 없는 경지를 흉내내려 하나, 도리어 무지(無知)에 떨어져서 공에 집착하는 외도가 되는 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림자의 자취를 보는 것으로 영원하고 확실한 진리를 탐구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견해를 늘어 놓으며 쉬지 않아 부질없이 피로만 극에 달하는 것이다.


如孔子迷 津問漁父 漁父曰 人有畏影惡跡 疾走不休 絶力而死 不知處陰以休影 靜處以息跡 愚亦甚矣. 何不一心爲道 息諍除非 自然過量超情 還淳返朴. 若以道自養則不失 以道濟他則不誑 以道治國則國泰 以道修家則家安 故不可頃刻忘道矣. 所以 道德經云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이것은 마치 공자가 길을 잃고 나루터에서 어부에게 길을 물어볼 때, 어부가 “어떤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와 발자국을 두려워하고 싫어하여, 이것에서 벗어나려 쉬지 않고 빠르게 달아나다가 기력이 다해 죽어 버렸습니다. 그는 그늘이 있는 곳에서는 그림자와 발자국이 저절로 없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참으로 이 사람의 어리석음이 크다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런데 어찌 하나의 마음으로 도를 삼아서 모든 다툼을 쉬고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여, 자연히 헤아리는 알음알이를 초월하여 순박한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만약 도()로써 자신을 양육하면 양심을 잃지 않고, 도()로써 남을 제도하면 남을 속이지 않으며,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태평해지고, 도()로써 집안을 다스리면 집안이 편안해지니, 그러므로 잠시라도 도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ꡔ도덕경ꡕ에서는 “도()를 잃고 나서 덕()이 생겼고 덕()을 잃고 나서 인()이 생겼으며, 인()을 잃고 나서 의()가 생겼고 의()를 잃고 나서 예()가 생겼으니 무릇 예()라는 것은 충직한 믿음이 쇠퇴하여 생기는 규범으로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시초가 된다”고 하였다.


莊子云 五色不亂 孰爲文彩 五聲不亂 孰爲律呂 白玉無瑕 孰爲珪璋 殘朴以爲器者 工匠之罪 毁道德而爲仁義者 聖人之罪 君能焚符破璽 賊盜自止 剖斗折衝 而民不諍 聖人生而賊盜起 聖人死而賊盜止 故仁義禮智信而利天下者少 害天下者多矣. 曷如開示如是不思議大威德廣大法門 普廕十方 群生等潤. 可謂 深達妙旨 冥合眞歸.



이것을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색(五色)이 어지럽혀지지 않았다면 누가 문채(文彩)를 다듬으려 할 것이며, 오성(五聲)이 어지럽혀지지 않았다면 누가 육율(六律)과 육려(六呂)를 조율하려 할 것이며, 어떠한 백옥이라도 조그마한 티가 없었다면 누가 규장(珪璋)이라는 옥()을 소유하려 하겠는가. 박달나무를 잘라 그릇을 만드는 것은 장인의 죄이며, 도덕(道德)을 훼손하여 인의(仁義)를 삼는 것은 성인의 죄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임금이 벼슬 내린 패부(佩符)와 관인을 불살라 없앨 수 있다면 도적은 저절로 없어지고, 수량을 재는 말()과 저울을 쪼개 버릴 수만 있다면 백성은 다투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나옴에 도적이 일어나니, 성인이 죽으면 도적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천하를 이롭게 함은 적고, 천하를 해롭게 함은 많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들이 어찌 이와 같이 부사의한 큰 위덕의 광대한 법문을 열어 널리 시방세계의 음덕이 되고 평등하게 중생을 자비로 적시는 것과 같겠는가. 가히 오묘한 종지에 깊게 통달하여 진여(眞如)로 돌아감에 계합하다고 할 만하다.

如香象渡河 步步到底 似養由駕箭 一一穿楊 盡爲破的之文 皆是窮源之說. 此是圓頓義 非權宜門. 如水月頓呈 更無來去 猶明鏡頓照 豈有前後.1)



이것은 마치 물을 건너는 코끼리의 걸음걸음이 물 바닥에 닿고, 활 잘 쏘는 양유기가 말을 타고 쏘는 화살 하나하나가 버들가지 잎을 뚫는 것과 같으니, 모든 문장이 핵심을 찌르는 글이 되며, 이 모두가 근원을 궁구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원돈(圓頓)의 이치로서 상황에 맞추어 말하는 방편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물 속에 달이 비추나 허공의 달이 오고 간 자취가 없고, 밝은 거울에 모습이 문득 비치는 것과 같으니, 여기에 어찌 전후(前後)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