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92. 허공에 있는 것 같아

通達無我法者 2008. 3. 3. 22:00
 

허공에 있는 것 같아

 

28-14-92 問 信入此法 還有退者不.1) 答 信有二種. 一 若正信堅固 諦了無疑 理觀分明 乘戒兼急 如此則一生可辦 誰論退耶. 二 若依通之信 觀力麤浮 習重境强 遇緣卽退. 如華嚴論云 如涅槃經 聞常住二字 尙七世不墮地獄 如華嚴經云 設聞如來名及所說法 不生信解 亦能成種 必得解脫 至成佛故. 何故經言 第六住心 及從凡夫信位 猶言有退. 此意若爲和會.



문 : 이 법을 믿고 들어가면서도 물러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 믿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만약 바른 믿음이 견고하고 잘 알아 의심이 없으며 이치를 관하는 것이 분명하면서 바른 생활로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곧 일생에 공부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니, 누가 물러날 것을 논하겠는가. 또 하나는 만약 바깥의 경계에 의지하여 통하려는 믿음으로서 이치를 관하는 힘이 거칠고 성글며 나쁜 습기가 많아서 경계에 끄달리는 힘이 강하다면 나쁜 인연을 만나 곧 공부에서 물러날 것이다.

이것은 ꡔ화엄론ꡕ에서 말한 것과 같고, 또한 ꡔ열반경ꡕ에서 “상주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오히려 일곱 생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으며, ꡔ화엄경ꡕ에서 “설사 여래의 명호와 설하는 법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지 않더라도 듣는 것만으로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가 이루어져 반드시 해탈하여 부처를 이룰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경의 다른 곳에서는 “제육주심(第六住心)과 범부의 신위(信位)에서는 오히려 보리심에서 물러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 뜻을 어떻게 회통시켜야 하겠는가.

解云. 十信之中 勝解未成 未得謂得 便生憍慢 不近善友 不敬賢良. 爲慢怠故 久處人天 惡業便起 能成就大地獄業. 若一信不慢 常求勝友 卽無此失. 若權敎中 第六住心 可有退位 實敎中 爲稽滯者 責令進修. 如舍利弗 是示現聲聞 非實聲聞. 假作方便2) 皆度衆生 使令進策 如權敎中 第六住心 可說實退. 何以故. 爲權敎中 地前三賢 總未見道 所修作業 皆是有爲. 所有無明 皆是折伏 功不强者3) 便生退還.



이 뜻을 풀이하여 보자. 십신(十信) 가운데는 수승한 이해를 아직 이루지 않았기에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하여 교만한 마음으로 훌륭한 친구를 멀리하고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공경하지 않는다. 교만하고 나태하므로 오랜 동안 인천(人天)에 거주하면서도 악업을 지어 큰 지옥의 과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수승한 도반을 구한다면 이런 실책은 없다.

만약 방편인 제육주심(第六住心)에서 공부가 퇴보할 수 있는 위치가 있다는 것은 진실한 가르침에서 공부에 막힘이 있는 사람을 책망하여 수행을 열심히 닦아 나가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은 사리불이 성문의 모습을 나타내나 사실은 성문이 아닌 것과 같다. 성문의 모습으로 임시방편을 지음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여 그들이 공부를 지어나가도록 하는 책략이니, 이것은 마치 방편인 제육주심(第六住心)에서 공부를 물러날 수 있다고 설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방편인 가르침에서 십지(十地) 이전의 삼현(三賢)은 모두가 참다운 도를 보지 않아서 수행하는 업이 모두 유위법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무명을 꺾어 조복받아야 할 것인데, 공력이 약한 사람은 여기에서 문득 공부에서 물러날 마음을 내는 것이다.

若折伏有力 亦不退失 如蛇有毒 爲呪力故 毒不能起. 但於佛法中 種於信心 謙下無慢 敬順賢良 於諸惡人 心常慈忍 於諸勝己者 諮受未聞 所聞勝法 奉行無妄4) 所有虛妄 依敎蠲除 於三菩提道 常勤不息. 夫爲人生之法 法合如然. 但不長惡而生 何須慮退. 華嚴疏云 深心信解 常淸淨者 信煩惱卽菩提 方爲常淨. 由稱本性而發菩提心 本來是佛 更無所進 如在虛空 退至何所.



만약 무명을 꺾어서 조복받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또한 공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마치 독사가 독이 있어도 뱀을 부리는 주력 때문에 독을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단지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믿음의 씨앗을 뿌리면서 겸손하게 교만심이 없이 현명하고 어진 사람을 공경하고 따라야만 하며, 모든 악인에게는 항상 인욕하면서 마음이 자비로와야 하며, 자기보다 수승한 모든 사람에게는 직접 물어서 듣지 못한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귀담아 들었던 수승한 법은 받들어 행하면서 거짓이 없게 하며, 일체 모든 허망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뿌리째 뽑아야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항상 부지런히 쉬지 않고 정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릇 이것이 참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이니 법이 합당하게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지 악한 업을 기르지 않는 삶이라, 여기에 어찌 공부에서 물러날 것을 걱정하겠는가. ꡔ화엄소ꡕ에서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는 것이 항상 청정하다”고 함은 번뇌가 곧 보리라는 것을 믿을 때 바야흐로 항상 청정할 수 있는 것이다. 본성에 맞게 보리심을 발하면 본래가 부처로서 더 나아갈 곳이 없이 마치 허공에 있는 듯하리니, 다시 어느 곳으로 물러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