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설한 바가 없다
29-3-94 又 說聽全收 生佛相在者 略擧二喩. 一者 如一明鏡 師弟同對說聽 以師取之 卽是師鏡 弟子取之 是弟子鏡. 鏡喩一心 師弟喩生佛. 是謂 弟子鏡中和尙 爲和尙鏡中弟子說法 和尙鏡中弟子聽 弟子鏡中和尙說法. 諸有知識 請詳斯喩. 此喩 猶恐未曉 又 如水乳和同一處 而互爲能和所和. 且順說聽 以能和爲說 所和爲聽. 且將水喩於佛 乳喩衆生 應言乳中之水和水中之乳 水中之乳受乳中之水.
또한 설법과 청법이 온전히 서로 거두어 중생과 부처님의 모습으로서 서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간략히 두 가지 비유를 들겠다.
첫째는 마치 깨끗한 하나의 거울 앞에서 스승과 제자가 똑같이 상대하여 설법하고 청법하는 것과 같으니, 하나의 거울을 스승이 취하면 스승의 거울이 되고 제자가 취하면 제자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거울은 하나의 마음을 비유하며, 스승과 제자는 부처님과 중생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자의 거울 속에 있는 스승이 스승의 거울 속에 있는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면, 스승의 거울 속에 있는 제자가 제자의 거울 속에 있는 스승의 설법을 듣는 것을 말한다. 모든 지식 있는 사람에게 바라건대, 이 비유를 자세히 살피기 바란다.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니, 두 번째의 비유를 들겠다.
설법과 청법은 마치 물과 우유가 같은 장소에 섞여 있으면서, 서로간에 섞기도 하며 섞여지기도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또 설법과 청법의 비유에 따르면 섞는 것은 설법이 되고, 섞여지는 것은 청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물은 부처님을 비유하고 우유는 중생을 비유하니, 마땅히 우유 속의 물은 물 속의 우유와 섞이고 물 속의 우유는 우유 속의 물을 받아들인다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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雖同一味 能所宛然 雖能所宛然 而互相在相遍相攝 思以准之. 又 衆生心中佛者 此明衆生稱性普周 而佛不壞相 在衆生心內. 言爲佛心中衆生說法者 此明佛心稱性普周 而衆生不壞相 在佛心內也. 更無別理 但說聽之異耳. 是知 一切衆生語言 皆法輪正體. 若離衆生言說 卽佛無所說.
비록 물과 우유가 섞여서 동일한 맛이라도 섞는 것과 섞여지는 것의 능(能)과 소(所)가 완연하며, 능과 소가 완연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하고 두루하면서 서로 거두어들이니, 비유에 준하여서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는 부처님이라는 것은 중생이 법성에 칭합하여 널리 두루하므로 부처님이 자기의 모습을 허물지 않은 채 중생의 마음 안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부처님 마음 가운데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이 법성에 칭합하여 널리 두루하므로 중생이 자기의 모습을 허물지 않은 채 부처님의 마음 안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 별다른 이치가 없이, 단지 설하는 이와 듣는 자가 다를 뿐이다. 이것으로서 일체중생의 언어가 모두 법륜의 바른 바탕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만약 중생의 언설을 떠난다면 부처님이 설할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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