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29-1-93 問 法唯心說者 云何敎立五時 聽分四衆. 答 諸佛無有色聲功德 唯有如如及如如智獨存. 凡有見聞 皆是衆生自心影像 則說唯心說 聽唯心聽. 離心之外 何處有法. 如思益經 云. 梵天言 何故說 不聽法者 乃爲聽經. 文殊言 眼耳鼻舌身意不漏 是聽法也. 所以者何 於內六入 不漏色聲香味觸法 乃爲聽經.
문 : 법은 오직 마음이라고 설하는 사람이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법을 듣는 대중을 넷으로 분리합니까.
답 : 모든 부처님은 색과 소리의 공덕에 있지 않고, 오직 여여(如如)한 경지와 여여한 지혜만 있을 뿐이다. 무릇 부처님의 모습과 말씀을 보고 들음은 모두가 중생이 자기의 마음에서 나타내는 그림자이니, 곧 설하는 것도 오직 중생의 마음이 설하며, 듣는 것도 오직 중생의 마음이 듣는 것이다. 이러하니 중생의 마음을 떠난 바깥 어느 곳에 어떤 법이 있겠는가. 이것은 ꡔ사익경ꡕ에서 범천이 문수에게 질문한 다음 내용과 같다.
범천 : 무슨 이유로 법을 듣지 않는 것이 경을 듣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문수 : 안․이․비․설․신․의에 번뇌가 없음이 부처님의 법을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이․비․설․신․의 육입이 색․성․향․미․촉․법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곧 부처님의 경을 듣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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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至 梵天問得忍菩薩 汝等 豈不聽是經耶. 答 如我等聽 以不聽爲聽. 古德云 如來演出 八辯洪音 聞者 託起自心所現. 如依狀貌 變起毫端 本質已無 影像如在. 群賢結集 自隨見聞 依所聞見 結集自語. 良以 離自心原 無有外境 離境亦無內心可得. 諸傳法者 非授與他 但爲勝緣 令自得法. 自解未起 無以悟他. 自解不從他來 他解寧非自起.
범천이 득인 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범천 : 당신들은 어찌하여 이 경을 듣지 않습니까.
득인 : 우리들이 듣는 것은 듣지 않음으로써 들음을 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 스님은 “여래가 여덟 가지 변재로서 많은 법음(法音)을 설하면 듣는 자는 자기 마음이 나타내는 것에 의하여 이해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생긴 모습에 의하여 그림 그려가는 붓의 변화가 일어남과 같아서, 본질은 이미 없는데도 영상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현인들이 경을 결집할 때에 자기가 보고 들은 것에 따라, 듣고 본 것에 의하여 자기들의 말로 결집한 것이다. 진실로 자기 마음의 근원을 떠나 따로 바깥 경계가 없으며, 바깥 경계를 떠나 또한 얻을 만한 안의 마음도 없다. 모든 법을 전함도 다른 사람에게 법을 준다는 것이 아니니, 이는 다만 수승한 인연이 되어 줌으로서 스스로 법을 얻도록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깨우칠 수 없다. 자기의 알음알이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니, 다른 것을 이해함이 어찌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 알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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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 結集及傳授者 皆得影像 不得本質 無有自心得他境故. 是知 結集乃是自心所變之經 至傳授者 傳授自心所變之法. 得影非質 思而可知. 若能常善分別 自心所現 能知一切外性非性 此人知見 可與佛同 所說之法 與佛無異. 悟入自覺聖智樂故.1) 寶性論偈云 天妙法鼓聲 依自業而有 諸佛說法者 衆生自業聞.
그러므로 경을 결집하고 법을 전하는 것이 모두 그림자일 뿐 본질이 아니니, 자기의 마음에서 다른 경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의 결집도 자기의 마음이 변하여 나타난 경이며, 법을 전함도 자기 마음이 변하여 나타난 법을 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림자를 얻는 것은 본질을 얻는 것이 아니니,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만약 자기 마음이 나타낸 바를 항상 잘 분별할 수만 있다면 일체 바깥의 성품이 마음과 다른 성품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한 사람의 지견은 부처님의 지견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설해지는 법도 부처님 설법과 다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느끼는 성스런 지혜의 즐거움에 깨달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ꡔ보성론ꡕ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의 미묘한 법고 소리가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들리듯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법도
중생은 지은 업에 따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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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妙聲遠離 功用處身心 令一切衆生 離怖得寂靜. 佛聲亦如是 離功用身心 令一切衆生 得證寂滅道. 又 偈云 譬如虛空中 雨八功德水 到鹹等住處 生種種異味. 如來慈悲雲 雨八聖道水 到衆生心處 生種種解味.
미묘한 법고 소리 멀리 있어도
뛰어난 공용이 신심(身心)에 있어
이 뜻을 알아듣는 일체중생들
두려움 떠나서 적정을 얻네.
부처님 소리도 이와 같아서
공용과 신심을 떠나 있어도
이 뜻을 알아듣는 일체중생들
적멸의 불도를 증득한다네.
비유하면 비어 있는 허공 가운데
팔공덕수 비가 되어 땅에 내려도
짜거나 싱거운 데 머무는 곳에
갖가지 다른 맛이 생기는구나.
여래의 자비로운 구름 속에서
팔성도 감로수가 비로 내리니
중생의 마음에 도달하며는
여러 가지 아는 맛을 생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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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曰. 如天鼓聲 應諸天所知之量 猶龍王雨 隨世間能感之緣. 證自法而不同 成異味而有別. 法亦如是 隨見差殊 於一乘而開出諸乘 從一法而分成多法
이것을 풀이하여 보자. 이는 마치 하늘의 북소리가 모든 하늘의 중생이 아는 만큼 감응하여 들리고, 용왕이 세간의 감응할 수 있는 인연을 따라 비를 내리는 것과 같아서 중생도 스스로 법을 증득함이 같지 않나니, 법 하나하나가 다른 맛을 이루어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이다. 법도 또한 이와 같이 중생의 견해에 따라 다르니, 하나의 가르침에서 여러 가지 가르침이 열려 나오며, 하나의 법에서 여러 가지 법으로 나누어 성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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