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이 닦는 필경공
32-4-103 華嚴論 云 若也但修空 無想法身1) 卽於智不能起用 若但一向生想 不見無相法身 卽純是有爲. 又云 如是大悲 如是智慧 如是萬行 皆爲長養初發心住 初生佛家之智慧大悲 令慣習自在. 故時亦不改 法亦不異 智亦不遷 猶如竹葦 依舊而成 初生與終 無有麤細. 亦如小兒 初生而後 長爲大 無異大也. 是知 差別行門 皆入畢竟空中 無有分別. 如龍樹菩薩問曰.
ꡔ화엄론ꡕ에서는 “만약에 단지 공(空)만을 수행하여 아무런 생각이 없는 법신이라면 곧 지혜에서 어떠한 작용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하나같이 단지 어떤 생각만을 일으켜서 어떠한 모습도 지니지 않는 법신을2) 보지 않았다면 곧 모두가 유위법이 된다”고 하였다. 또 “올바른 대비심과 지혜와 만행은 모두 수행자의 초발심을 증장시키기 때문에, 처음 불가에 발심한 사람의 지혜와 자비가 익숙해져 자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발심이 있는 자리에서 시간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떤 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옮겨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마치 대나무와 갈대가 옛 모습 그대로 성장하여서 처음 생겨날 때의 모습과 뒤에 자라난 모습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과 같다. 이것은 또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날 때의 모습이 뒷날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과도 같다”고 하였다.
이 비유로서 차별화된 수행문이 모두 필경공 가운데에 들어가서 어떠한 분별도 없음을 알 것이다. 이것은 용수 보살이 질문하는 다음 내용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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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菩薩知佛是福田 衆生非福田 是非菩薩法 菩薩以何力故 能令佛與畜生等. 答曰 菩薩 以般若波羅蜜力故 一切法中 修畢竟空心. 是故 於一切法 無分別. 如畜生 五陰十二入十八界和合生 名爲畜生 佛亦如是 從諸善法和合 假名爲佛. 若人憐愍衆生 得無量福德 於佛著心 起諸惡因緣 得無量罪. 是故 知一切法畢竟空 故不輕畜生 不著心貴佛. 復次 諸法實相 是一切法無相 是無相中 不分別是佛是畜生. 若分別 卽是取相.
문 : 만약 보살이 부처님은 복전(福田)이고 중생은 복전이 아니라고 안다면 보살의 법이 아닙니다. 보살은 무슨 힘으로 부처님과 축생을 평등하게 할 수 있습니까.
답 :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힘으로 일체 모든 법 가운데에서 필경에 공(空)한 마음을 닦는다. 그래서 일체 모든 법에 분별이 없다. 마치 축생을 오음과 십이입과 십팔계가 화합하여 생겨난 것을 이름하여 축생이라고 하듯, 부처님도 이와 같이 모든 좋은 법으로부터 화합하여 생겨난 것을 임시로 부처님이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무량한 복덕을 얻을 것이나,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집착하여 나쁜 인연을 일으킨다면 한량없는 죄를 지을 것이다.
이러므로 일체 모든 법이 필경에 공(空)한 것임을 알아 축생을 경멸하지도 말며, 집착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귀하게 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일체 모든 법에 어떠한 상(相)도 없음이니, 어떠한 상(相)도 없는 가운데에 부처님이나 축생이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분별한다면 그 자체가 곧 어떤 모습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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