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04. 중론의 팔불(八不)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3:54
 

중론의 팔불(八不)

 

33-6-104  論偈云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能說是因緣 善滅諸戱論 我稽首禮佛 諸說中第一. 今以因果 會釋八不義. 言不生者 如二十時爲因 三十時爲果. 若離二十 有今三十 可言有生 若離二十 則三十不可得 是故不生.



ꡔ중론ꡕ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며

   상()도 아니요 단()도 아니다

   일()도 아니요 이()도 아니며

   래()도 아니요 거()도 아니다.


   이러한 인연들을 설할 수 있어

   세간의 모든 희론 멸해 버리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하오니

   모든 설법 가운데 최상의 설법.


이제 인과로써 팔불(八不)의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겠다.

불생(不生)이라는 것은, 스무 살 때를 인()이라 하고 서른 살 때를 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스무 살이란 인()을 떠나서 지금 서른 살이란 과()가 있다면 생겨났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만, 스무 살이란 인()을 떠난다면 서른 살이란 과()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불생(不生)이라고 한다.

故中論云 離劫初穀 今穀不可得 是故不生. 不滅者 則二十時不無 故不滅. 若二十時滅 今不應有三十時. 中論云 若滅 今應無穀 而實有穀 是故 不滅也. 不常者 則三十時 無二十時 是故 不常 中論云 如穀芽時 種則變壞 是故 不常 不斷者 因二十 有三十相續 是故 不斷 中論云 如從穀有芽 是故不斷 若斷 不應相續



그러므로 ꡔ중론ꡕ에서는 “아주 옛날 겁초(劫初)의 곡식을 떠나서는 지금의 곡식을 얻을 수가 없으니, 이런 이유로서 불생이다”라고 하였다.


불멸(不滅)이라는 것은, 서른 살이란 과()에는 곧 스무 살이란 인()이 없지 않기 때문에 불멸(不滅)이라고 한다. 만약 스무 살 때의 인()이 멸하였다면 지금 응당 서른 살의 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ꡔ중론ꡕ에서는 “아주 옛날 겁초의 곡식이 멸하였다면 지금 응당 곡식이 없어야 하나 실재로는 곡식이 있으니, 이런 이유로 불멸(不滅)이다”라고 하였다.

불상(不常)이라는 것은, 서른 살의 과()로 있을 때에는 스무 살의 인() 그대로가 없기 때문에 불상(不常)이라고 한다. 이것을 ꡔ중론ꡕ에서는 “마치 곡식의 싹이 틀 때에는 씨앗이 변하여 허물어지는 것이니, 이런 이유로 불상(不常)이다”라고 하였다.

부단(不斷)이라는 것은, 스무 살인 인()에서 서른 살인 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부단(不斷)이라고 한다. 이것을 ꡔ중론ꡕ에서는 “마치 곡식에서 싹이 나와 있는 것과 같으니, 이런 이유로 부단(不斷)이라 한다. 만약 곡식이 단멸하였다면 응당 곡식이 싹으로 나와서 서로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不一者 二十不與三十同體 各性而住故 不一. 中論云 如穀不作芽 芽不作穀 是故 不一. 不異者 不離二十 有三十. 若二十姓張 三十不異. 中論云 若異 何故 分別穀芽穀莖穀葉. 是故 不異. 不來者 二十不至三十時 是故 不來. 不去者 二十時 當處自寂 不復更生故 不去也. 達此理者 則離一切戱論 契會中道 則眞諦矣.



불일(不一)이라는 것은, 인()이었던 스무 살 때의 몸이 과()인 서른 살의 몸과 같은 몸이 아니라, 스무 살과 서른 살의 제각기 특성을 가지고 머물기 때문에 불일(不一)이라고 한다. 이것을 ꡔ중론ꡕ에서는 “마치 곡식이 싹일 수 없으며 싹이 곡식일 수 없으니, 이런 이유로 불일(不一)이다”라고 하였다.

불이(不異)라는 것은, 스무 살의 인()을 벗어나지 않고서 서른 살의 과()가 있는 것이다. 만약 스무 살 때의 성()이 장()씨라면 서른 살때의 성()도 장()씨로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을 ꡔ중론ꡕ에서는 “만약 곡식과 다르다면 무슨 이유로 싹과 줄기와 잎을 곡식의 싹과 곡식의 줄기와 곡식의 잎이라고 분별하는가. 이런 이유로 불이(不異)이다”라고 하였다.

불래(不來)라는 것은, 스무 살인 인()이 서른 살인 과()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래(不來)라고 한다. 불거(不去)라는 것은, 스무 살인 인()은 당처에 스스로 공적하여 다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불거(不去)라고 한다.

이 이치를 통달한 자는 곧 일체의 모든 희론을  떠나 중도에 계합하니 곧 진실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