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택(荷澤) 화상
6조의 법을 이었고, 서경(西京)의 하택사(荷澤寺)에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신회(神會)요 성은 고씨(高氏)이며, 양양(襄陽) 사람이다.
화상이 처음으로 6조의 처소에 이르니, 6조가 물었다.
"멀리서 오느라고 수고했다마는 본래의 것을 가지고 왔는가? 만일 본래가 있다면 의당 주인을 알아볼 터이니, 그대가 한 번 말해 보아라."
선사가 대답했다.
"신회(神會)는 머무름 없음으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이에 6조가 말했다.
"이 사미(沙彌)가 어찌 하찮은 말을 하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마구 때리니, 선사는 매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큰 선지식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만났으니, 어찌 목숨을 아끼랴?'
6조가 그의 말이 뜻깊고, 감정이 지극히 간절했음을 살폈기 때문에 시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친히 심인(心印)을 전해 주니, 심인을 전해 받고 동도(東都)에서 교화를 펴면서 종지(宗旨)를 다지니, 남쪽의 혜능(慧能), 북쪽의 신수(神秀)의 뜻이 신회(神會)로 인해 드날려졌고, 조계의 한 가지가 비로소 우주(宇宙) 안에 향기를 피웠다.
천보(天寶) 때에 어사(御史)로 있던 노액(盧液)은 북종 보적(普寂)의 문도였는데 신회가 낙양에서 무리를 모아 교화한다는 사실을 상소로 아뢰니, 현종(玄宗)이 불렀다. 황제의 부름에 응하여 궁에 이르러서 황제[天顔]의 질문에 응대하는 그 말과 이치가 황제의 심정에 부합하여 황제가 정중히 대하였다. 유사(有司)의 재량으로 균주(均州)로 옮기게 했는데, 지덕(至德)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3 권 > 141 - 150쪽
K.1503(45-233),
2년에 숙종(肅宗)의 명으로 형주(荊州) 개원사(開元寺)에 살게 되었다.
이 때 선사의 고향에서 소식이 전해 왔는데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이에 선사가 승당(僧堂)에 들어가서 추[槌]를 치고는 말했다.
"우리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니, 대중께 모두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읽기를 청합니다."
대중이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말했다.
"스님네여, 수고하셨소. 잘들 돌아가시오."
선사가 상원(上元) 원년 5월 13일에 입적하니, 시호는 진종(眞宗) 대사였고, 탑호(塔號)는 반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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