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관 담영(達觀曇穎: 989~1060)스님이 동오(東吳)땅을 행각할 무렵은 겨우 16~17세이다.
진회(秦淮)에 배를 묶어두고 봉선사(奉先寺)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 곳에는 모두 율종 스님들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달관스님이 선승인데다가 나이가 어리다 하여 예우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님은 그들을 꾸짖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비구가 되어 찾아오는 비구를 미워하면 불법은 장차 없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대하는가?”
이에 누군가가 대답하였다.
“스님이 이 곳의 주인이 되었을 때 공경히 맞이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담영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이곳에 머물 만한 한가한 시간이 없지만, 도를 행하는 자로 주인을 바꾸어, 시방의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케 하리라.”
그리고는 당시 금릉 태수로 있던 내한(內翰) 섭청신(葉淸臣)에게 편지를 보내어 만났다.
섭공이 그에게 물었다.
“어제 늦게야 이 곳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봉선사의 건립에 대한 내역을 이렇게 자세히 알고 계십니까?”
“간밤에 옛 비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이어서 율종스님들이 여기에 사는데서 오는 폐단과 풍속을 손상시키는 사례를 자세히 말하니 섭공은 그를 매우 기특히 생각하였으며,
봉선사는 이를 계기로 선종사찰로 바뀌게 됐다.
동오지방의 많은 교학승들은 조사들이 전법(傳法)한 게송을 번역하는 이가 없다고 비난하였고,
선승들도 그들과 논변을 하였으나 선종의 참다운 도를 잃게 되어 비방하는 소리만 더해지자 스님은 그들을 꾸짖었다.
“이는 달마스님이 이조(二祖)를 위해 하신 말씀인데, 어찌 번역이 필요하겠는가?
달마스님을 양 무제 (梁 武帝)가 찾아가 처음 만났을 때 무제가 스님에게 묻지 않았는가.
‘부처님의 으뜸가는 이치〔第一義諦〕가 무엇입니까?’
‘텅텅 비어 부처라 할 것이 없읍니다〔廓然無聖〕.’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달마스님이 중국 말에 능통하지 못하였다면 당시 어떻게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 뒤로 강사들은 다시는 감히 이러쿵저러쿵 시비하지 않았다.
담영스님이 마도(魔道)·외도(外道)의 기세를 꺾고 복종시킨 기개와 스승 없이 자연스럽게 얻은 지혜는 젊어서부터 그러하였다.
또한 일에 부딪치면 막힘없이 대처하여 의심과 두려움이 없었는데 이는 타고난 천성이었다.
스님은 뒷날 석문 온총(石門蘊聰:905~1031)스님의 법을 잇고,
수산 성념(首山省念: 926~993)스님의 적손(嫡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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