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曹溪: 638~713, 六朝慧能)스님께서 열반하시려는 차에 문인인 행도(行瑫), 초속(超俗), 법해(法海)스님 등이 물었다.
“스님의 법을 누구에게 전하시렵니까?”
“내 법을 받을 사람은 20년 후에 이 곳에서 크게 법을 펼칠 자이다.”
“그가 누구입니까?”
“누구인가를 알고 싶거든 대유령(大庾領) 꼭대기에서 그물로 덮쳐라.”
규봉 종밀(圭峯宗密)스님이 하택 신회(荷澤神會)스님을 옹립하여 조계스님의 법을 정통으로 전수받은 자라 확신시키고자 조계스님의 유언을 말 그대로 풀이하였다.
“재〔嶺〕란 높은 것을 말한다.
하택스님의 성이 고씨(高氏)이므로, 은밀히 이를 나타낸 것이다.”
한편 남악 회양(南嶽懷讓)스님을 깍아내리고자 방계(旁系)출신이라고 매도하여 말하였다.
“회양은 조계 문하의 방계 출신으로서 한낱 평범한 문도일 뿐이니 이런 무리는 천명이나 된다.”
아! 사슴을 뒤쫓는 자는 산 속에 있으면서도 산을 보지 못하고, 황금을 탐내어 덮친 자는 곁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니다.
종밀스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하택스님뿐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선사들에 대해서는 시비를 불문하고 의례껏 모두 헐뜯었다.
‘대유령 꼭대기에서 그물로 덮쳐라’ 하신 말은 대사께서 깨달으신 종지를 완전히 드러내보이신 한마디인데도 이를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고,
회양스님은 사문 가운데 사문인데도 그를 한낱 평범한 문도라 하였다.
종밀스님의 뜻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웃음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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