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39. 고려의 승통을 맞이함/유성(有誠)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1:35

 

 

 

동경(東京) 각엄사(覺嚴寺) 유성(有誠)스님은 오랫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여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고 명성이 드높았다.  

스님의 인품은 순박하여 꾸밈이 없었으며 고고한 행실과 원대한 식견을 갖추어 근대 강사로서는 가장 훌륭하였다.  

원우(元祐) 초(1086)에 고려 승통(僧統: 大覺國師 義天)이 바다 건너 중국을 찾아와 현수(賢首)스님의 가르침을 전수받은 후 본국으로 돌아가 이를 유통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기를 바라는 표(表)를 올렸다. 

 

그리하여 천자의 명으로 좌우양가(左右兩街)에 법을 전해 줄 인물을 천거하도록 하니,

담당 관리는 유성스님을 적임자로 천거하였으나 스님은 표를 올려 굳이 사양하였다.

   “신(臣)은 비록 마음을 다하여 강학(講學)한다 하지만 식견이 얕고 비루하며 특히나 운수가 이미 다하였는데도 부질없이 학자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터입니다.   

 

오늘날 다른 나라의 저명한 승려가 바다를 건너와 도를 물으니, 당연히 식견이 높고 견문이 해박한 자를 뽑아 스승으로 삼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보기로는 항주(杭州) 혜인원(慧因院) 도원(道源)* 스님은 교학을 정밀하게 공부한 바 있고 외학(外學)까지도 두루 통달하였으니,

그를 천거하여 저를 대신하는 것이 실로 여론에 걸맞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천자의 명으로 승통이 바라는대로 조봉낭(朝奉郎) 양걸(楊傑)을 그의 숙소로 보내어 함께 전당(錢塘)으로 찾아가〔杭州 大中祥符寺에서 淨源을 참례함〕법을 받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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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천(義天)의 행장(行狀)에 의하면 정원(淨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