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건중정국(建中靖國) 초에(1102) 친구 집에서 복엄 양아(福嚴良雅)스님이 편집한 동산 수초(洞山守初: 910~990)스님의 어록 한 편을 얻었다.
그것은 범위가 넓고 내용이 오묘하여 참으로 법문의 진수라 할만한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말 가운데 말이 있는 것을 사구(死句)라 하고, 말 가운데 말이 없는 것을 활구(活句)라 하니, 그 근원을 통달하지 못하면 제8 마계(第八魔界)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 말하였다.
“말은 일로 전개되지 못하고 말로는 기연에 부합되지 못하니, 말에 의지하면 잃고 말에 얽매이면 미혹하게 된다.
이 네 귀절에서 분명한 것을 보아내면 초연한 납자가 될 수 있다.
한편 서까래 하나, 기와장 한 조각, 죽 한 그릇을 보시한 인연으로도 인천(人天) 세계에게 선지식이 될 수 있으나,
이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결국 어리석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운암(雲庵)스님이 평소 설법할 때면, 수초스님이 깨친 경지는 그 격식과 도량이 뛰어나다고 자주 칭찬하였는데,
내 우연히 옛 기록을 펼쳐보다가 스님이 도반에게 보낸 게송과 서문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지난날 동산(洞山)스님은 운문(雲門)스님을 찾았을 때, 한마디 말 끝에 종지를 깨쳐* 부처님의 바른 지견을 얻었다.
그리하여 해묵은 모자와 냄새 절은 장삼을 훌훌 벗어버리고 네 귀절의 게로써 자신의 깨달음을 밝혔다.
그것은 구체적인 일을 통해 도를 보일 수 있는 자유자재한 작용〔機用〕과 기연(機緣)에 계합되는 정교한 도풍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연에 응하고 사물을 대할 때 말에 편승하지 않고 글에 매이지 않았으니,
마치 사자왕이 자재한 경지를 얻어 포효하면 모든 짐승이 벌벌 떠는 것과 같이 법왕이신 부처님의 법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에서는 운문스님을 찾아 뵌 자들은 모두가 생사에 자유자재하는 경지〔坐脫立亡〕를 얻는다고들 하는데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불법에 대한 지견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산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게송 몇 구절로 설명하려 한다.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나 일을 해나가니
봄이 깃든 온누리에 어디엔들 꽃피지 않으랴
그에게 삼돈봉(三頓棒)을 주어 법당에 절하니
온 천하가 한집안인 줄을 알겠네.
大用現前能展事 春來何處不開花
放伊三頓參堂去 四海當知共一家
천차만별하게 기연에 계합할 줄 아는 것은
눈 밝으신 종사께서 자유자재하던 시절
북두성에 몸 감추고 말을 하지만*
보통을 뛰어넘는 소식을 아는 사람 흔치 않네.
千差萬別解投機 明眼宗師自在時
北斗藏身雖有語 出群消息少人知
산천경계 노닐면서 말에 의지하되
스스로의 생각이 조금도 치우치지 않았으나
냄새 절은 장삼을 훌훌 벗지 못하면
또다시 세속따라 세월을 흘려보내리.
遊山翫水便乘言 自己商量總不偏
鶻臭布衫脫末得 且隨風俗度流年
문구에 얽매이고 말에 의지하는 건 봉사이자 귀머거리라
아무리 참선하고 도를 닦아도 안 될 수밖에
깨달으면 조금도 힘들이지 않으리니
불 속에서 사마귀가 호랑이를 삼키도다.
滯句乘言是瞽聾 參禪學道自無功
悟來不費纖毫力 火裏螂蟟呑大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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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 수초스님에게 운문스님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왔는가?” “묘도(杳渡)에서 왔습니다.”
“여름엔 어디 있었는가?” “호남(湖南) 보자(報慈)에 있었읍니다” “언제 거기서 떠났는가?”
“8월 25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운문스님이 “몽둥이 석 대를 따끔하게 맞아야겠구나” 하였다.
다음날 수초스님이 “어제 큰스님께 아픈 매 석 대를 맞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하니,
운문스님이 “이런 밥통 같으니, 강서 호남에서 그러고 다녔구나” 하였다.
수초스님은 이 말 끝에 깨쳤다.
*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한마디입니까?" 하니 "북두성에 몸을
감추느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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