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스님이 과거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의 회하에 전객(典客: 손님 접대를 맡은 소임)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 스님과 밤을 지새며 고금의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조주스님의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화두에 대하여 끈질긴 논쟁을 하던 중,
행자 하나가 곁에 서 있다가 비웃고 나갔다.
이 객승이 물러나자 설두스님은 그를 불러 따졌다.
“손님과 마주 앉아 있는데 감히 그럴 수 있는가?”
“전객에게 고금을 논할 말재주는 있으나 고금을 논할 만한 안목은 없기 때문에 감히 웃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조주스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고?”
그러자 행자는 게송으로 답하였다.
토끼 한 마리 옛 길에 누워 있노라니
보라매 갓 보자마자 낚아채 버렸네
뒤늦게 온 사냥개 아무런 신통〔靈性〕없어
마른 나무 향하여 부질없이 지난 흔적 찾는구나.
一兎橫身當古路 蒼鷹纔見便生擒
後來獵犬無靈性 空向枯椿舊處尋
설두스님은 크게 놀랐으며 마침내 그와 도반이 되었다.
어떤 이는 그가 바로 승천사(承天寺)의 종(宗)스님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당시의 융성했던 법회를 상상하여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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