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승 운암(雲巖)스님의 회하에 있을 때 몸소 보경삼매(寶鏡三昧)를 얻었다는 인가를 받고 요점〔的要〕을 애써 공부해왔다.
이제 그대에게 이를 전수하노니, 그대는 이 법을 잘 보호하여 끊기지 않도록 하고 참다운 법기(法器)를 만나면 그때 전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비밀로 하고 드러내서는 안되니 세간에 유포되어 우리 종문이 없어질까 두렵다.
말법(末法)시대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혜가 메마르다〔乾慧〕.
공부해 나가는 사람들의 진위(眞僞)를 분별하고자 하면 세 가지 번뇌〔三種滲漏〕가 있으니, 기연(機緣)을 만나거든 곧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사견〔見滲漏〕이니, 이는 기연이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독해(毒海)에 떨어지는 것이며,
둘째는 망정〔情滲漏〕이니, 지혜에 항상 방향〔向背〕있어 견처(見處)가 치우치고 메마름이며,
셋째는 망어〔語滲漏〕이니, 묘리(妙理)를 체득하였으나 종지를 잃어 마음이 본말에 어두워 혼탁한 지혜로 흘러가는 자이다.
이 세 가지 번뇌를 잘 알아두도록 하라.“
그리고는 강요(綱要)에 관한 세 수의 게송을 지었다.
처음은 ‘주반(主伴)을 동시에 행하는 것(敲唱俱行)’에 대한 게송이다.
금침과 두 고리를 다 갖추고
은연중에 좁은 길을 모두 덮었네
보배 도장은 텅 비어 오묘한 것이라
겹겹의 바늘땀을 열어주리라.
金針雙鎖備 狹路隱全該
寶印當空妙 重重錦縫開
그 다음은 ‘금침과 고리의 현묘한 길〔金鎖玄路〕’에 대한 게송이다.
밝음 속에 어둠이 엇갈리니
고르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겠구려
힘을 다하여 진퇴를 찾노라니
쇠사슬의 그물은 촘촘도 하구나
交互明中暗 功齊轉覺難
力窮尋進退 金鎖綱鞔鞔
다음으로는 ‘이치나 현상에 끄달리지 않음〔理事俱不涉〕’에 대한 게송이다.
이치와 현상에 모두 관계하지 않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미세한 것마저 끊었네
바람 타고 날 때는 못난 솜씨 잘난솜씨 가릴 것 없으니
번뜩이는 번개불은 따라가기 어렵구려
理事俱不涉 回照絶幽微
背風無巧拙 電火爍難追
납자들이 기연을 마주하여서는 번뜩이는 번갯불도 뒤쫓아오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세가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원각경」에 ‘중생은 알음알이에 장애가 되고 보살은 깨달음을 떠나지 못하였다〔衆生爲解礙 菩薩未離覺〕’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말 한마디에 생사를 벗어날 정도의 큰 지혜를 가진 최상근기가 아니라면 이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대우(大愚)스님이 황벽 희운(黃檗希運)스님에 대하여 노파심이 많다고 한 데에는 참으로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황벽스님은 항상 말하기를,
“결코 그 다음 생각〔第二念〕으로 흘러가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 선문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였다. 선종의 이런 뜻 깊은 말을 근기 낮은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마음대로 차별하는 마음을 내면서 불법을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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