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봉 종밀(圭峯宗密)스님은 「일용게(日用偈)」를 지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깨달음의 마음이요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
어지러운 마음이다
어지러운 마음은 정을 따라 움직이다가
죽음에 이르면 업보에 이끌려가지만
깨달음의 마음은 정에서 나오지 아니하기에
죽음에 이르러 업보를 바꿀 수 있다.
作有義事 是惺悟心
作無義事 是散亂心
散亂隨情轉 臨終被業牽
惺悟不由情 臨終能轉業
우연히 「당사(唐史)」를 펼쳐보았더니, 이훈(李訓: 선종 때의 재상)이 패하였을 때(859) 간신의 무고로 벼슬에서 쫓겨나 종남산으로 도주하여 종밀(宗密)스님에게 의지한 적이 있었다. 스님은 그를 숨겨주려고 하였지만 문도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는 결국 봉상사(鳳翔寺)로 도망하였다가 주질현(盩窒縣)의 관리에게 체포되어 사형에 처하여졌다. 이 일로 구사량(仇士良)이 종밀스님을 체포하여 죄을 물었으나 스님은 태연히 말하였다.
“이훈과는 오랫동안 사귀어 왔으며, 우리 불법은 곤경에 빠진 자를 구해 주는데, 거기에는 원래 사랑과 미움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란 본디 내 운명일 뿐이다.”
생각컨대 사대부와 교류한 당(唐)대의 비구들을 간혹 전기에서 볼 수 있으나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기고 불교에 욕을 기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종밀스님만은 이렇듯 초연하였고, 역사를 쓰는 사람도 기꺼이 붓을 들어 이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그것은 도를 실천함이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게송을 살펴보면 모두가 망정의 경계〔情境〕를 철저히 벗어나고자 함이었으니 마치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재하게 떠나가는 것과 같은 예이다. 어찌 이러쿵저러쿵하는 무리들에게 휩싸여 몸을 더럽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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