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 거둔(龍牙居遁: 835~923)스님이 반신(半身) 자화상을 만들자,
그의 법제자 보자 광화(報慈匡化)스님이 찬을 지었다.
해는 첩첩 산중에 뜨고
둥근 달은 문 앞에 와 있는데
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완전히 드러내려 하지 않을 뿐.
日出連山 月圓當戶
不是無身 不欲全露
두 노스님은 동산 오본(洞山悟本)스님의 법손이었는데 그들의 자재하게 맞물림〔回互〕을 중시하여 정위(正位)를 범하지 않고,
말은 10성(十成: 자세하고 완전함)을 피하여 금시(今時)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광화스님은 홀로 오묘한 말을 마음에 새기되 종지를 잃지 않았으니 귀한 일이라 하겠다.
여항 유정(餘杭惟政: 986~1049)스님 또한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찬을 썼다.
옛스러운 얼굴에 엉성한 모습으로 주장자 기댔으니
분명코 수보리를 그려냈도다
‘공’을 깨닫고도 성색(聲色)을 떠나지 않으니
달빛 아래 외로운 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하네.
貌古形疎倚杖黎 分明畫出須菩提
解空不許離聲色 仰聽孤猿月下啼
유정스님은 훤출하게 초연하고 뛰어난 인물이다.
그러므로 스님의 운치는 ‘스치는 바람에 맑은 달〔光風霽月〕’과도 같이 높았으며,
문장은 맑고 매끄러우면서도 도풍이 서린 격조를 지녔다.
예부터 많은 찬과 게송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이 두 편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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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正位)는 본래 그 자체가 완전한 자리, 금시(今時)는 수증(修證)을 빌려
성취되는 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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