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53. 남악 복엄사의 스님들/운봉 문열(雲峯文悅)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3:37

 

 

 

운봉 문열(雲峯文悅 : 998~1062)스님이 두번째로 늑담사(泐潭寺)를 찾아갔을 때,

황룡 혜남(黃龍慧南)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헤어진 후의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매우 기뻐하며 오래 머물면서 혜남스님에게 석상사(石霜寺) 자명(慈明 : 987~1040)스님을 다시 한번 만나보도록 권하였다.    

 

이에 혜남스님은 석상사에 가서 산 아래 객사에 묵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명스님이 평범하고 소탈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을 후회하여 그의 문앞에까지 가보지도 않고 곧바로 남악(南岳) 복엄사(福嚴寺)에 이르러,

한 달도 못되어 기실(記室 : 서기)을 맡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곳의 장로(長老) 지현(智賢)스님이 돌아가시자 고을에서 자명스님을 그 곳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이에 야참(夜參) 법문에서 여러 총림의 잘못된 견해를 비난하는 설법을 처음으로 들었는데 모두가 평소에 어렵게 얻은 요체들이었다.  

그리하여 감탄해 마지않고 정성을 다하여 도를 물으려고 세 차례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꾸지람만 듣고 물러났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여 맡은 일을 모두 되돌려주고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지만 자명스님의 꾸지람은 여전하였다.

 

   황룡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다만 깨닫지 못하였기에 찾아와 물은 것입니다.   

선지식께서는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주셔야 하는데도 가르쳐 주시지는 않고 오로지 꾸지람만 하시니, 어찌 그것을 예부터 법을 전수해 온 격식이라 하겠습니까?”   

 

   그러자 자명스님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남서기(南書記)야!    내가 너를 꾸짖는다고 생각하느냐?”

   황룡스님은 그 말에 마치 통 밑바닥이 쑥 빠지듯 훤히 깨치게 되어 절을 올리고 일어서니 몸에서는 식은 땀이 흠뻑 흘러내렸다.    

이에 편안한 마음으로 조주스님의 일화를 논하는 게를 지어 올렸다.

 

   총림에 뛰어나신 조주스님

   노파를 시험 한 일 까닭없는 짓이네

   오늘날 온누리가 거울처럼 맑으니

   길손이여 길에서 원수를 맺지 마오.

 

   傑出叢林是趙州    老婆勘破沒來由

   如今四海淸如鏡    行人莫與路爲讎

 

   자명스님은 이 게송을 보고서 웃으시며 “매우 잘된 게송이지만 한 글자를 고쳐야겠다” 하고는

“노파를 시험한 일 까닭이 있었구나〔老婆勘破有來由〕”라고 고쳐주었으니,

스님의 오묘하고 정밀한 기지도 과연 그러하였다.

   황룡스님이 그곳을 떠나면서 자명스님께 여쭈었다.

 

   “대사(大事)를 끝마치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자 자명스님은 그를 꾸짖었다.

   “옷 입고 밥 먹는 일은 끝마치는 것이 아니며, 똥 누고 오줌 싸는 일은 끝마칠 것이 아니다.”

   내 지난번 복엄사(福嚴寺)에 갔을 때 아름다운 산천경계를 보고 아울러 남악 혜사(南嶽慧思 : 515~577)스님의 「복엄사기(福嚴寺記)」를 읽어보니,

‘이 곳 산천은 사람의 의지력을 솟구치게 하므로 이 곳에서 머물 사람들 중에는 도를 깨칠 자가 많겠다’ 하였다.   

 

그러므로 종문(宗門)의 조사들이 법을 전수할 때 모두 이 곳을 거친 것이리라.   

비록 큰 법을 전하는 일은 반드시 받을 만한 사람을 의지하나 마조(馬祖)스님도 이 곳에서 회양(懷讓)스님의 인가를 받고 강서지방에서 도를 크게 떨쳤으며,

이제 자명, 황룡 두 스님의 사적 또한 이와 비슷하니 과연 이상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