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두(雪竇)스님은 「조영집(祖英集)」과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지은 일이 있다.
첫 편에서 '달마스님과 양무제의 뜻이 서로 계합되지 못함〔初祖不契梁武〕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온 나라 사람이 쫓아가도 다시 오지 않으리니
천고만고에 속절없이 생각케 하네.
國人追不再來 千古萬古空相憶
이 귀절은 양무제와 만나지 못한 것을 거듭 탄식한 말이다.
그런데 이 뜻을 모르는 자가 이 귀절 앞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달마스님께서 떠나버리자 금릉 보지(寶誌 : 418~514)스님이 양무제에게 물었다.
'폐하는 이 사람을 아십니까?'
관음보살의 응신(應身)입니다.
부처님의 심법〔心印〕을 전하러 이 땅에 오셨는데 어찌하여 예우를 하지 않았읍니까?'
이 말에 양무제가 뒤쫓아가려 하니
, 보지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설령 온 나라의 사람이 뒤쫓아가도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지스님은 천감(天鑑) 13년(514)에 죽었고 달마스님은 보통(普通) 원년(520)에야 금릉에 왔다는 사실을 설두스님이 어찌 몰랐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 서술이 설두스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전사본(傳寫本)에는 합국(闔國 : 온나라)이 개국(蓋國)으로 잘못 쓰여져 있으니,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또 동산(洞山)스님의 '삼 세근〔麻三斤〕'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생각하니 장경스님과 육대부는
통곡을 할지 말아야 할지를 깨달았었네.
堪憶長慶陸大夫 解道合哭不合哭
생각컨대 이것은 장경(長慶)스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일찍이 장경스님은 육대부의 이 말을 듣고 통곡한 후 대중에게 "말하여라! 통곡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이 사실이 「전등록」에 있는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이를 '웃어야 하고 통곡해서는 안된다〔合笑不合哭〕'고 하여,
울 곡(哭)자를 웃음 소(笑)자로 바꾸어 썼으니 원래 뜻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왕문공(王文公)이 선승을 만나면 으례 한퇴지(韓退之)와 대전 보통(大顚寶通 : 732~824)스님이 만난 일을 물었는데,
간간히 잘못 대답하는 스님들이 있었다.
이에 왕문공은 스님들의 말에는 억측이 많고 정확한 뜻을 캐지 않는 까닭에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므로 불교에 뜻을 둔 자는 마땅히 사실을 고증해 보아야 하며 구차스럽게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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