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89. 은밀히 전한다는 뜻/ 양대년(楊大年)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7:01

 

 

 

나는 어느날 밤 한 스님과 양대년(楊大年 : 楊億)의 「불조동원집(佛祖同源集)」 서(序)를 읽다가 “예전에 여래께서 연등 부처님 회상에서 몸소 수기〔記別〕를 얻었지만 실제로는 자그마한 법도 얻은 게 없으니 그러므로 ‘대각능인(大覺能仁)’이라 부르게 되었다”라는 귀절에 이르러 책을 놓아두고 긴 한숨을 지은 적이 있다.  

 

양대년은 한낱 사대부임에도 논변과 지혜가 ‘전할 바 없는 불조의종지〔無傳之旨〕’를 깨달았는데 오늘날 산림의 선승들은 도리어 고개를 들어 남에게서 참선과 불법을 구하니 가소로운 일이다.  

그러자 함께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석두(石頭)스님은 ‘천축 땅 부처님의 마음을 동서에서 은밀히 전하였다〔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 참동계 첫 구절〕’하였는데, 어찌 스님께서 망언을 하였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그 글을 잘못 읽은 것이다.  

이른바 ‘은밀히 부촉했다〔密付〕’라 함은 의원이나 무당이 세상 사람이 보지 못하게 비장의 기술을 너와 나 둘만이 전하는 것과는 달라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밝게 깨닫게 하는 것을 ‘은밀’이라 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장경 헌(長慶獻)스님은 ‘28대의 조사께서 모두 마음을 전한다〔傳心〕하였지, 말을 전한다〔傳語〕하지는 않았다.  

이는 다만 의심나는 마음〔疑情〕을 깨뜨려주었을 뿐,

결코 불심(佛心)의 체(體)에서 기연에 응수한 일은 없다’ 하였다.  

 

또한 도명(道明)스님은 대유령(大庾嶺)에서 육조스님을 친견하고 깨달음을 발하게 되자 ‘이 밖에 또 다른 은밀한 뜻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육조스님은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은 은밀한 뜻이 아니다.  

모든 은밀한 뜻은 너에게 있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이는 석가모니께서는 다만 연등 부처님 회상에서 내려주신 수기를 받았을 뿐인 경우와 같아서 만일 전할 수 있는 법이 있었다면 곧 바로 전해 주었을 것이다.   

아난존자 또한 일찍이 크게 깨우치고 하마터면 ‘여래가 나에게 삼매(三昧)를 내리셨다고 생각할 뻔 하였다’고 하였다.  

 

이와같이 옛 성현들의 말씀이 모두 있으니 이것으로 마음의 거울을 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향엄(香嚴 : ?~898)스님이 대나무를 치는 소리를 듣고서 멀리 위산(潙山)을 바라보며 두 번 절하고, 고정(高亭)스님이 강 건너에서 덕산(德山)스님을 바라보고 곧장 강을 가로질러 달려갔던 일들을 어떻게 귓전에 은밀히 주고 받은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