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상국 이제현 (相國 李齊賢) 에게 답함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상국께서 떠나실 때 병에 대해 하신 말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산
승도 구업을 꺼려하지 않고 우리 집의 더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없고 노소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다 결정적
인 신심에 의해 도과 (道果) 를 성취하셨으므로,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 (正覺) 을 이룬다
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시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상국께서는 젊어서 과거에 높이 올라 한 나라의 정승이 되고 또 제일가는 문장가로서 나라
의 큰 보배가 되셨는데, 또 우리 불법문중에 마음을 두시니, 고금의 현인들에 비해 백천만
배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금생에 깨치지 못하면, 아마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해
죽고 나서는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
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
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데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
(安身立命) 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다시 답함
전에 산매화를 보냈을 때 선물을 주시고 또 회답에 무자 (無字) 화두를 드신다 하니, 산승
은 상국께서 일찍부터 `무'자를 참구하였기 때문에 친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매 다시 묻는 말에 이렇게 공부하리라 하시니 도리어 근심스럽고 놀랍습니
다. 부디 마음을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나 반마디를 내려 사람들로 하
여금 제자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 천차만별한 일이 있더라
도 뜻이 위에만 있어 다른 것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른 화두를 참구할 것이 있
겠습니까?
하물며 다른 화두를 들 때에도 `무'자를 참구해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자에 대해 조
금이라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한 스님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 〔無〕 ' 하였다
는데 `무'라고 한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들되, 부디 언제 깨치고 깨치지 못할까를 기다
리지 말고 재미가 있고 없음에 신경쓰지도 말며, 또 힘을 얻고 얻지 못함에도 관계치 마십
시오. `무'자 그것만을 오로지 들어 그대로 나아가면,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
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며 하나도 재미가 없어 마치 모기가
무쇠소의 등에 올라간 것 같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는 과거
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이 몸과 마음을 던져버린 곳이요, 또 상국께서 힘을 얻고 힘을 덜
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곳입니다. 거기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리면 비로소 도란, 첫째
는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한 주먹에 황학루 (黃鶴樓) 를 때려눕히고
한 발길로 앵무주 (鵡洲) 를 차서 뒤엎는다
의기 (意氣) 에 의기를 더 보태니
풍류스럽지 않은 곳도 풍류스럽구나.
一拳拳倒黃鶴樓 一 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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