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10. 지신사 염흥방 (知申事 廉興) 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6:32

 

 

 

10. 지신사 염흥방 (知申事 廉興) 에게 주는 글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승속과 남녀를 묻지 말고 상중하의 근기도 묻지 말며 또 초
참·후학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
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선법
을 자라게 한다' 하셨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
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공 (公) 은 젊어서 높은 벼슬에 올랐고 임금님을 만나 사무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데도 우리
불법에 대해 의심없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 닦는 방법을 물으시니, 어찌 세간 출세간을 막
론하고 가장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닦는 법을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광명사 (廣明寺) 에 있을 때 공에게 말
씀드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들되, 어디서나 언제나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끊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참구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말고, 다닐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섰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앉았거나 누웠을 때
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옷 입고 밥 먹으며 대소변 보고 손님을 영접하며, 나
아가서는 공무를 처리할 때나 임금님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나
필경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
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관직이나 속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화택 (火宅) 을 떠나지 않고라도, 서천 (西天) 의 스물 여덟 분 조사와
동토 (東土) 의 여섯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본유 (本有) 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