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①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3:46

 

①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은정희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논】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어떤 행실을 닦아서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른바 부정취중생에 의하여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으므로 업의 과보를 믿고 십선을 일으키며,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무상보리(無上菩提)를 구하고자 하며, 여러 부처를 만나 직접 받들어 공양하고 신심을 수행한다. 이리하여 일만 겁을 지나서 신심이 성취되기 때문에 모든 부처와 보살이 가르쳐서 발심케 하니, 혹은 대비에 의하여 스스로 발심케 하며, 혹은 정법이 없어지려 함에 의해서 호법의 인연으로 스스로 발심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심이 성취되어 발심하게 된 사람은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 필경 퇴전하지 아니하니, 이를 여래종(如來種) 중에 머물러 정인(正因)과 상응한다고 한다. 만약 어떤 중생이 선근이 미소(微少)하여 아득히 먼 옛날부터 번뇌가 매우 두텁다면 비록 부처를 만나 공양하게 되더라도 인천(人天)의 종자를 일으키고, 혹은 이승(二乘)의 종자(種子)를 일으킨다. 설사 대승을 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근기가 결정되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나며, 혹 여러 부처에게 공양함이 있더라도 아직 일만 겁을 지나지 아니하여 중도에 연(緣)을 만나 또한 발심함이 있다. 이른바 부처의 색상(色相)을 보고 그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여러 스님에게 공양함에 의하여 그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이승인의 가르침에 의하여 마음을 일으키며, 혹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 마음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발심들은 모두 결정되지 아니 한 것이니, 나쁜 인연을 만나면 혹 퇴실하여 이승지에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信成就發心者. 依何等人, 修何等行, 得信成就, 堪能發心. 所謂依不定聚衆生, 有熏習善根力故, 信業果報, 能起十善, 厭生死苦, 欲求無上菩提. 得値諸佛, 親承供養. 修行信心, 經一萬劫. 信心成就故, 諸佛菩薩敎令發心. 或以大悲故, 能自發心. 或因正法欲滅, 以護法因緣, 能自發心. 如是信心成就得發心者, 入正定聚, 畢竟不退. 名住如來種中, 正因相應. 若有衆生善根微少. 久遠已來煩惱深厚. 雖値於佛亦得供養. 然起人天種子. 或起二乘種子. 設有求大乘者, 根則不定, 若進若退. 或有供養諸佛未經一萬劫, 於中遇緣亦有發心. 所謂見佛色相而發其心. 或因供養衆僧而發其心. 或因二乘之人敎令發心. 或學他發心. 如是等發心, 悉皆不定, 遇惡因緣, 或便退失墮二乘地.〕

【소】 처음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뒤에는 답하였다. 묻는 중에 ‘어떤 사람에 의하여’라고 한 것은 닦는 사람을 물은 것이요, ‘어떤 행을 닦아서’란 닦아야 할 행위를 물은 것이며,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을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발심의 결과에 대하여 그 행위의 이루어짐을 물은 것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묻는 바에 바로 답한 것이고, 둘째는 열악(劣惡)한 자를 들어 수승한 자를 나타낸 것이다. 바로 답한 것 안에 앞서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것이 있다. 처음에 ‘부정취중생(不正聚衆生)에 의하여’라고 한 것은 처음 물음에 답한 것이니, 닦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삼취(三聚)를 분별한다면 여기에 여러 문(門)이 있지만, 이제 이 글 중에서는 다만 보살의 십해(十解) 의 결정불퇴(決定不退)를 정정취(正定聚)라 하고, 아직 십신에 들어가지 아니하여 인과를 믿지 않는 것을 사정취(邪定聚)라 하며, 이들 중간에 도에 나아가는 사람이 발심하여 무상보리를 구하려고 하지만 마음이 아직 결정되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나아가고 어떤 때는 물러서는 것을 십신이라 하고 부정취(不定聚)라 함을 밝힌 것이다. 이제 이 사람에 의하여 닦을 바의 행위를 밝히는 것이다.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으므로ㆍㆍㆍㆍㆍㆍ’이하는 그 다음에 두 번째 물음에 답한 것이니,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닦는 바의 행위를 밝힌 것이다. ‘훈습의 힘과 선근의 힘이 있다’고 한 것은 여래장내의 훈습력에 의하고 또한 전세(前世)의 선근을 닦은 힘에 의하므로 이제 신심(信心)을 닦는 등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며, ‘업의 과보를 믿어서 십선을 일으킨다’고 한 것은 복분(福分)의 선을 일으키는 것이다.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무상도(無上道)를 구한다’는 것은 도분(道分)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여러 부처를 만나 신심을 수행한다’는 것은 바로 닦는 바의 도분의 선근을 밝힌 것이니, 이른바 열 가지 신심을 닦는 것이며, 이것의 갖추어진 모양은 《일도장(一道章)》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일만 겁을 지나ㆍㆍㆍㆍㆍㆍ’이하는 세 번째 물음에 답한 것이니, 신심이 성취되는 모양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시기를 들어서 믿음이 성취되어 발심하는 연(緣)을 밝혔고, 두 번째는 취(聚)를 기준으로 하여 발심해서 머무는 자리를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일만 겁에 이르러서 신심이 성취된다’고 한 것은 십신에서 십천 겁을 지나 신심이 성취되면 곧 십주에 들어감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본업경(本業經)》에서 “이 신상보살(信想菩薩)이 십천 겁에 십계법(十戒法)을 행하면 응당 십주심에 들어서 초주(初住)의 자리에 들어간다” 고 한 말과 같다. 이를 풀이하면 이 중에서 들어가는 초주의 자리란 십주에서 처음 발심하여 머무는 자리(初發心住位)를 말하는 것이니, 이 자리라야 바야흐로 신심이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며, 이러므로 또한 믿어서 십심(十心)에 들어간다고 이름하는 것이지, 십해 이전의 십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그것이 그러함을 알게 되는가? 이는 《인왕경》에서 “습종성(習種性)에 십심이 있으니, 이미 이승의 일체 선지(善地)를 초월하였으며, 이 습인(習因) 이전에 십선을 행하는 보살은 물러남도 있고 나아감도 있어 마치 가벼운 털이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ㄹ으로 갔다가 하는 것과 같다. 비록 십천 겁에 십정도(十正道)를 행하지만 보리심을 발하여야 이에 마땅히 습인위(習忍位)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이글로 증면\D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경(經)에서 ‘십천’이라 한 것은 곧 이것이 일만(一萬)이다. ‘부처와 보살이 가르쳐 발심케 하며......’라고 한 것은 발심의 연(緣)이 많이 있으나 여기서는 대략 세 가지 수승한 연만을 낸 것이다. ‘이와 같이(신심이 성취되어)......’이하는 그 발심이 머무는 자리를 나타낸 것이고, ‘신심이 성취되어......, 정정취에 들어간다’고 한 것은 곧 십해의 초발심주에 들어간 것이므로 ‘필경 퇴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이 때 바로 습종성의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여래종(如來種) 중에 머문다고 한다’고 하였고, 그 닦는 행위가 불성(佛性)을 수순하기 때문에 또한 ‘정인(正因)과 상응한다’고 말한 것이다. 위에서부터 앞서의 세 가지 물음에 바로 답하여 마쳤다. ‘만약 어떤 중생이ㆍㆍㆍㆍㆍㆍ’이하는 열악한 자를 들어 수승한 자를 나타내었다. 십신의 자리 안에는 수승한 자도 잇고 열악한 자도 있으니, 수승한 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십주에 진입하고 열악한 자는 여기서와 같이 이승지에 물러나 떨어진다. 이는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 “모든 보살이 십신의 자리 중에서는 대승을 닦음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여 흔히 생사를 두려워하며 중생을 자비하는 마음이 아직도 엷어서 대승의 본원(本願)을 버리고 소승도(小乘道)를 닦기를 즐겨 하므로 소승을 수행하려 한다고 말한다”라 한 것과 같다. 대의가 이와 같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믿음이 이루어지는 행위를 밝혔다.
〔初中亦二. 先問. 後答. 文中言依何等人者, 是問能修之人. 修何等行者, 問其所修之行. 得信成就堪能發心者, 對發心果, 問其行成也. 答中有二. 一者正答所問. 二者擧劣顯勝. 正答之內, 對前三問. 初言依不正聚衆生者, 是答初問, 顯能修人. 分別三聚, 乃有多門. 今此文中, 直明菩薩十解以上, 決定不退, 名正定聚. 未入十信, 不信因果, 名邪定聚. 此二中間, 趣道之人, 發心欲求無上菩提, 而心未決或進或退, 是謂十信, 名不定聚. 今依此人明所修行也. 有熏習以下, 次答第二問, 明不定人所修之行. 言有熏習善根力者, 依如來藏內熏習力, 復依前世修善根力, 故今得修信心等行也. 言信業果報能起十善者, 起福分善也. 厭生死苦求無上道者, 發道分心也. 得値諸佛修行心者, 正明所修道分善根所謂修行十種信心, 其相具如一道章說也. 逕一萬劫以下, 答第三問, 明其信心成就之相, 於中有二. 一者擧時, 以明信成發心之緣. 二者約聚, 顯其發心所住之位. 初中言至一萬劫信心成就者, 謂於十信逕十千劫, 信心成就, 卽入十住. 如本業經云. 是信想菩薩, 於十千劫行十戒法, 當入十住心, 入初住位, 解云. 此中所入初住位者, 謂十住初發心住位. 此位方得不退心信心. 是故亦名信入十心. 非謂十解以前十信. 何以得知而其然者. 如仁王經云. 習種姓有十心, 已超二乘一切善地. 此習忍已前行十善菩薩, 有退有進, 猶如輕毛隨風東西. 雖以十千劫行十正道, 發菩提心, 乃當入習忍位. 以是文證, 故得知也. 經言十千, 卽此一萬也. 言佛菩薩敎令發心等者. 發心之緣, 乃有衆多. 今略出其三種勝緣也. 如是以下, 顯其發心所住之位. 言信心成就乃至入正定聚者, 卽入十解初發心住. 以之故言畢竟不退也. 卽時正在習種性位. 故言名住如來種中也. 其所修行隨順佛性. 是故亦言正因相應. 上來正答前三問竟. 若有以下, 擧劣顯勝. 十信位內, 有勝有劣. 勝者如前進入十住. 劣者如此退墮二乘地. 如攝大乘論云. 諸菩薩在十信位中, 修大乘未堅固. 多厭怖生死. 慈悲衆生心猶劣薄. 喜欲捨大乘本願. 修小乘道. 故言欲修行小乘. 大意如是. 文相可知. 上來明信成之行.〕

【논】
다음에 신성취발심이란 어떠한 마음을 발하는 것인가? 대략 말하자면 세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직심이니 진여법을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심심(深心)이니 일체의 모든 선행을 이루기 좋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대비심이니 모든 중새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묻기를, “위에서 법계는 하나의 상이며 불체(佛體)는 둘이 없다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오직 진여만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모든 선행을 배우려고 하는 것인가?” 답하기를 “비유컨대 큰 마니보(摩尼寶)가 그 체성은 맑고 깨끗한 것이지만 거친 광석의 때를 가지고 있어 만약 사람이 마니보의 깨끗한 본성을 생각하면서도 방편으로써 갖가지로 갈고 다듬지 않으면 끝내 깨끗해 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의 진여의 법도 그 체성이 텅비고 깨끗하나 한량없는 번뇌의 더러운 때가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진여를 생각하지만 방편으로써 갖가지로 훈습하여 닦지 않으면 또한 깨끗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가 한량이 없어 모든 법에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선행을 닦아서 대치하는 것이니, 만약 사람이 모든 선법(善法)을 수행하면 절로 진여법에 귀순하기 때문이다. 대략 방편을 설명하자면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행근본방편이다. 모든 법은 자성이 생김이 없음을 보고 망견을 여의어 생사에 머물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업과를 잃지 아니함을 보고 대비를 일으켜 여러 복덕을 닦아 중생을 섭화하여 열반에 머물지 아니함을 말하니, 이는 법성의 주착함이 없음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능지방편이다. 자기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모든 액법을 그치게 하여 증장하지 않게 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법성의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근을 일으켜 증장시키는 방편이다. 삼보(三寶)에게 부지런히 공양하고 예배하며, 모든 부처를 찬탄하고 따라 기뻐하며 권청(勸請)하여 이와 같이 삼보를 애경(愛敬)하는 순후한 마음 때문에 믿음이 증장되어 무상의 도를 구하는 데 뜻을 두며, 또 불ㆍ법ㆍ승의 힘으로 보호됨에 의하여 업장(業障)을 녹이고 선근이 퇴전하지 않음을 말하니, 이는 법성의 치장을 여의는 것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대원평등방편이다. 미래에 다하도록 모든 중생을 교화, 제도하여 남음이 없게 하여 모두 무여열반을 이루도록 발원하는 것을 마하는 것이니, 이는 법성의 단절됨이 없음을 수순하기 때문이며, 법성이 광대하여 모든 중생에 두루하여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피차(彼此)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구경에 적멸하기 때문이다.”
〔復次信成就發心者, 發何等心. 略說有三種. 云何爲三. 一者直心. 正念眞如法故. 二者深心. 樂集一切諸善行故. 三者大悲心. 欲拔一切衆生苦故. 問曰. 上說法界一相, 佛體無二. 何故不唯念眞如. 復假求學諸善之行. 答曰. 譬如大摩尼寶, 體性明淨, 而有鑛穢之垢. 若人雖念寶性, 不以方便種種磨治, 終無得淨. 如是衆生眞如之法體性空淨, 而有無量煩惱染垢. 若人雖念眞如, 不以方便種種熏修, 亦無得淨. 以垢無量遍一切法故, 修一切善行以爲對治. 若人修行一切善法, 自然歸順眞如法故. 略說方便有四種. 云何爲四. 一者行根本方便. 謂觀一切法自性無生, 離於妄見, 不住生死. 觀一切法因緣和合, 業果不失, 起於大悲, 修諸福德, 攝化衆生, 不住涅槃. 以隨順法性無住故. 二者能止方便. 謂참愧悔過, 能止一切惡法不令增長. 以隨順法性離諸過故. 三者發起善根增長方便. 謂勤供養禮三寶, 讚歎隨喜, 勸請諸佛. 以愛敬三寶淳厚心故, 信得增長, 乃能志求無上之道. 又因佛法僧力所護故, 能消業障善根不退. 以隨順法性離痴障故. 四者大願平等方便. 所謂發願盡於未來, 化度一切衆生使無有餘皆令究竟無餘涅槃. 以隨順法性無斷絶故. 法性廣大, ?一切衆生, 平等無二, 不念彼此, 究竟寂滅故.〕

【소】
두 번째는 발심하는 모양을 나타내었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로 밝혔고 둘째는 왕복하여 의심을 제거하였다. 처음 중에 직심이라고 한 것은 굽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약 진여를 생각하면 곧 마음이 평등하게 되어 다시 다른 갈래가 없을 것이니, 무슨 회곡(?曲:어그러지고 굽어짐)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바로 진여법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곧 이행의 근본인 것이다. 심심(深心)이라고 한 것은 근원을 궁구한다는 뜻이다. 만약 하나의 선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근원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 근원에 돌아가는 것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만행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선행을 즐겨 이루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며, 이는 곧 자리행(自利行)의 근본이다. 대비심이란 널리 제도(濟度)한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기 때문’이라 말하였으며, 이는 곧 이타행(利他行)의 근본이다. 이 세 마음을 내면 어떤 악이든 여의지 않음이 없고 어떤 선이든 닦지 않음이 없으며 한 중생도 제도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니, 이를 무상보리심이라 한다. ‘묻기를’이하는 왕복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묻는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대답하는 것과 거듭 나타내는 것이다. 처음 바로 대답하는 것 중에 비유와 합이 있다. ‘대략 방편을 설명하자면’이하는 거듭 나타내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第二顯發心之相. 於中有二. 一者直明. 二者往復除疑. 初中言直心者, 是不曲義. 若念眞如, 則心平等, 更無別岐, 何有?曲. 故言正念眞如法故. 卽是二行之根本也. 言深心者, 是窮原義. 若一善不備無由歸原. 歸原之成, 必具萬行. 故言樂集一切諸善行故. 卽是自利行之本也. 大悲心者, 是晋濟義, 故言欲拔衆生苦故. 卽利他行之本也. 發此三心, 無惡不離, 無善不修, 無一衆生所不度者, 是名無上菩提心也. 文曰以下, 往復除疑. 問意可見. 答中有二. 直答. 重顯. 初直答中, 有喩, 有合. 略說以下, 重顯可知.〕

【논】
보살이 이 마음을 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 되며,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에 따라서 여덟 가지로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도솔천으로부터 나와서 모태에 들어가고 모태에 머물러 모태에서 나와서 출가하여 성도(成道)하고 법륜을 굴리며 열반에 듦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과거 한량없는 때로부터 유루(有漏)의 업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그 나는 바에 따라서 미세한 고통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업의 계박이 아닌 것이니, 대원에 의하여 자재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다라 중에서 ‘혹 악취(惡趣)에 물러나 떨어짐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은 실제로 물러나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만 초학보살로서 아직 정위(正位)에 들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를 위하여 두려워하게 하여 저로 하여금 용맹케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 보살이 한번 발심한 후에는 겁약한 마음을 멀리 여의어 이승지에 떨어짐을 끝내 두려워하지 않으며, 가령 무량무변한 아승기겁에 어려운 행실을 부지런히 애써야만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겁내어 좌절하지 않는 것이니, 일체법이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임을 믿어 알기 때문이다.
〔菩薩發是心故, 則得少分見於法身. 以見法身故, 隨其願力能現八種利益衆生. 所謂從兜率天退, 入胎, 住胎, 出胎, 出家, 成道, 轉法輪, 入於涅槃. 然是菩薩未名法身. 以其過去無量世來 有漏之業未能決斷. 隨其所生與微苦相應. 亦非業繫. 以有大願自在力故. 如脩多羅中, 或說有退墮惡趣者, 非其實退. 但爲初學菩薩未入正位而懈怠者恐怖, 令使勇猛故. 又是菩薩一發心後, 遠離怯弱, 畢竟不畏墮二乘地. 若聞無量無邊阿僧祇劫, 勤苦離行乃得涅槃, 亦不怯弱. 以信知一切法 從本已來自涅槃故. 〕

【소】
세 번째는 그 발심의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수승한 덕을 나타내었고 다음은 미세한 허물을 밝혔으며 세 번째는 권교(權敎)를 회통(會通)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실행을 찬탄하였다. 처음의 두 구절에서 ‘곧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된다’는 것은 자리(自利)의 공덕을 밝힌 것이니, 십해 보살이 인공문(人空門)에 의하여 법계를 보는 것이며, 이는 상사견(相似見)이므로 ‘조금(少分)’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원력에 따라서’이하는 이타(利他)의 덕을 나타낸 것이다. ‘여덟 가지로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것은 《화엄경》에서 십주 처음의 발심주를 찬탄하여 말하기를 “이 발심보살이 여래의 일신(一身)ㆍ무량신(無量身)을 얻어 모두 일체의 세간에 성불하게 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보살을’이하는 미세한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수다라 중에......’이하는 세 번째 권교(權敎)를 회통한 것이다. 이는 《본업경(本業經)》에서 “칠주(七住) 이전은 퇴분이 되므로 만약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에 일겁 내지 십겁에 보리심이 퇴전케 되는 것이니, 정목천자와 법재천자와 사리불 등이 제칠주에 들고자 하다가 그 사이에 악지식ㆍ악인연을 만났기 때문에 범부의 불선한 악 중에 들어간 것과 같으며, 내지 널리 설한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여기서 이뜻이 단지 권어(勸語)일 뿐 실제로 퇴전함이 아니을 풀이한 것이다. ‘또 이 보살이......’이하는 네 번째 그 실행을 찬탄한 것이다. 영구히 겁약(怯弱)함이 없게 되니, 이는 곧 저 경(經)이 방편의 가르침일 뿐 실제의 가르침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第三顯其發心功德. 於中有四. 初顯勝德. 次明微過. 三通權敎. 四歎實行. 初中二句. 則得少分見法身者, 是明自利功德. 十解菩薩, 依人空門見於法界. 是相似見, 故言少分也. 顯其願力以下, 顯利他德. 能現八種利益衆生者. 如華嚴經歎十住初發心住云, 此發心菩薩, 得如來一身無量身, 悉於一切世間示現成佛故. 然是以下, 顯其微過. 如脩多羅以下, 第三會通權敎. 如本業經云. 七住以前爲退分. 若不値善知識者. 若一劫乃至十劫, 退菩提心. 如淨目天子, 法在王子, 舍利佛等欲入第七住, 其間値惡知識因緣故, 退入凡夫不善惡中. 乃至廣說. 今釋此意但是權語, 非實退也. 又是菩薩以下, 第四歎其實行. 永無怯弱, 卽成彼經是權非實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