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③ 증발심(證發心)

通達無我法者 2008. 3. 24. 13:50

 

③ 증발심(證發心)

은정희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논】
증발심이란 정심지(淨心地)로부터 보살구경지(菩薩究竟地)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계를 증득하는가? 소위 진여니, 전식(轉識)에 의하여 경계라고 말하지만 이 증득은 경계가 없는 것이요 오직 진여지(眞如智)뿐이므로 법신(法身)이라 하는 것이다. 이 보살이 일념(一念)사이에 시방의 남김없는 세계에 이르러 모든 부처에게 공양하여 법륜(法輪)을 굴리기를 청하니, 그것은 오직 중생을 개도(開導)하여 이익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문자에 의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지(地)를 초월하여 빨리 정각을 이루는 것을 보이니 이는 겁약한 중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혹은 내가 한량없는 아승기겁의 기간에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설하였으니 이는 게으르고 교만한 중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수한 방편의 불가사의함을 보이지만 실로 보살은 종성의 근(種性根)이 같으며 발심이 곧 같고 증득한 것도 같아서 초과하는 법이 없으니, 모든 보살이 모두 다 세 아승기겁을 거치기 때문이다. 단지 중생 세계의 같지 않음과 보는 바와 듣는바 근(根:능력)ㆍ욕(欲:희망)ㆍ성질이 다름에 따라서 행하는 것을 보이는 것도 차별이 있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의 발심상이란 세 가지 마음의 미세한 상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진심이니 분별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방편심이니 자연히 두루 행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업식심이니 미세하게 생멸하기 때문이다.
〔證發心者. 從淨心地, 乃至菩薩究竟地, 證何境界. 所謂眞如. 以依轉識說爲境界. 而此證者無有境界. 唯眞如智. 名爲法身. 是菩薩於一念頃, 能至十方無餘世界, 供養諸佛, 請轉法輪. 唯爲開導利益衆生, 不依文字. 或示超地速成正覺, 以爲怯弱衆生故. 或說我於無量阿僧祇劫當成佛道, 以爲懈慢衆生故. 能示如是無數方便, 不可思議. 而實菩薩種性根等, 發心則等, 所證亦等, 無有超過之法. 以一切菩薩皆經三阿僧祇劫故. 但隨衆生世界不同. 所見所聞根欲性異. 故示所行亦有差別. 又是菩薩發心相者, 有三種心微細之相. 云何爲三. 一者眞心. 無分別故. 二者方便心. 自然?行利益衆生故. 三者業識心, 微細起滅故.〕


【소】
처음 중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위지(位地)를 나타내었고, 둘째는 증득의 뜻을 밝혔으며, ‘이 보살ㆍㆍㆍㆍㆍㆍ’이하는 세 번째로 덕을 찬탄한 것이고, ‘발심상ㆍㆍㆍㆍㆍㆍ’이하는 네 번째로 상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 중에 ‘전식에 의하여 경계라고 말한다’고 한 것은 전식의 상은 능견의 작용이어서 이 능견에 대하여 경계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러한 제지(諸地)에서 일어난 증지(證智)는 전식에 의하여서만 진여를 증득하기 때문이며, 능견인 소의(所依)에 대하여 임시로 경계라고 말하나 바로 증지에 나아가서는 곧 능(能)ㆍ소(所)가 없기 때문에 ‘ 이 증득은 경계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네 번째 중에 진심(眞心)이란 무분별지를 말하는 것이요, 방편심이란 후득지요, 업식심이란 두 가지의 지혜(무분별지와 후득지)가 의거하는 아라야식이니, 사실을 말한다면 또한 전식과 현식이 있는 것이지만 다만 지금은 근본의 세상(細相)만을 대략 든 것이다. 그러나 이 업식은 발심의 덕이 아니니, 다만 두 가지지혜가 일어날 때 이러한 미세하게 생멸하는 허물이 있어 불지(佛地)의 순정한 덕과 같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합해서 발심상이라고 말한 것일 뿐이다.
〔初中有四. 一標位地. 二明證義. 是菩薩以下, 第三歎德. 發心相以下, 第四顯相. 第二中言以依轉識說爲境界者. 轉識之相, 是能見用. 對此能見說爲境界. 以此諸地所起證智, 要依轉識而證眞如. 故對所依假說境界. 直就證智, 卽無能所. 故言證者無境界也. 第四中言眞心者, 謂無分別智. 方便心者, 是後得智. 業識心者, 二智所依阿黎耶識. 就實而言. 亦有轉識及與顯識. 但今略擧根本細相. 然此業識非發心德. 但爲欲顯二智起時, 有是微細起滅之累. 不同佛地純淨之德. 所以合說爲發心相耳.〕

△ 이 아래는 두 번째 성만(成滿)의 공덕을 각각 나타낸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승한 덕을 바로 나타냈으며 둘째는 왕복하여 의심을 제거하였다.
〔△以下第二別顯成滿功德. 於中有二, 一者直顯勝德. 二者往復除疑.〕

【논】
또 이 보살은 공덕이 다 이루어져서 색구경처(色究竟處)에서 모든 세간 중 가장 큰 몸을 보이니, 이는 일념 상응하는 지혜로써 무명이 단번에 없어지는 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며 자연히 불가사의한 작용이 있어 시방에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함을 말하는 것이다.
〔又是菩薩功德成滿, 於色究竟處示一切世間最高大身. 謂以一念相應慧, 無明頓盡, 名一切種智. 自然而有不思議業, 能現十方利益衆生.〕

【소】
처음 중에 ‘공덕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제십지(第十地)에서 인행(因行)이 다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색구경처에서 높고 큰 몸을 보이며ㆍㆍㆍㆍㆍㆍ’일체종지라 한다’는 등은 만약 시왕(十王)의 과보별문(果報別門)에 의한다면 십지보살은 제사선왕이며 색구경처에서 성도하는 것이니, 곧 이는 보신불의 타수용신이다. 이는 《십지경(十地經)》의 ‘과보를 지니는 것’에대한 설명에서 “구지보살이 대범왕이 되어 이천세계를 맡으며, 십지보살은 마혜수라천왕이 되어 삼천세계를 맡는다”고 하고, 《능가경(楞伽經)》에서 “비유하자면 아라야식이 자심이 나타낸 몸과 기세계(器世界)등을 한꺼번에 분별함과 같으니, 보불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시에 모든 중생계를 성취시켜 구경천의 정묘궁전의 수행청정한 곳에 둔다”고 하고, 또 아래의 게송에서 “욕계와 무색계 거기에서는 부처가 성불하지 않고, 색계 중의 상천에서 욕심을 여읜 중에서 득도한다”고 한 것과 같다.
【初中言功德成滿者, 謂第十地因行成滿也. 色究竟處示高大身, 乃至名一切種智等者. 若依十王果報別門. 十地菩薩第四禪王. 在於色究竟天成道. 則是報佛他受用身. 如十地經攝果報中云. 九地菩薩作大梵王, 主二千世界. 十地菩薩作魔醯首羅天王. 主三千世界. 楞伽經言. 譬如阿黎耶識, 頓分別自心現身器世界等. 報佛如來亦復如是. 一時成就諸衆生界. 直究竟天淨妙宮殿修行淸淨之處. 又下頌言. 欲界及無色. 佛不彼成佛. 色界中上天. 離欲中得道.】

【별기】
여기서 이 능가경의 뜻을 해석하자면, 만약 실수용신(實受用身)의 뜻을 논한다면 법계에 두루하여 어느 곳이건 있지 않음이 없으나, ‘오직 저 천(天 :색계 중의 상천)에 있는 신(身)만이 성불한다’고 말한 것은 보살이 나타낸 색상(色相)인 화수용신(化受用身)이기 때문이지 실보신(實報身)이 저 색계의 상천에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계(界)’를 말한 것이다. 별기는 여기서 그치다.
〔別記-今釋此經意云. 若論實受用身之義, ?於法界無處不在. 而言唯在彼天之身而成佛者. 爲菩薩所現色相化受用身. 非實報身唯在彼天. 爲顯此義, 故言界也. 別記. 止此.〕

【소】
《범망경(梵網經)》에서 “그 때에 석가모니불이 제사선의 마혜수라천왕궁에서 한량없는 대범천왕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보살의 무리들과 더불어 연화장세계의 노사나불이 설한 심지법문품을 설하시니, 이 때 석가가 몸소 지혜광명을 내시어 이 천왕궁으로부터 연화대장세계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 석가모니불이 곧 이 세계의 대중을 높이 받들고 연화대장세계의 백만억 자금광명궁중에 이르니 노사나불이 백만 연화의 밝고 밝은 광명좌위에 앉아 계셨다. 그 때 석가불과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노사나불게 예경하거늘 그 때 노사나불이 곧 크게 기뻐하시어 ‘이 모든 불자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 수행하라. 나는 이미 백만아승기겁 동안에 심지(心地)를 수행하여 이로써 인(因)을 삼아 처음으로 범부를 버리고 등정각을 이루어 노사나가 되어서 연화장세계해에 머문 것이다. 그 대(臺)의 둘레에 천 개의 잎이 있고, 한 개의 잎이 하나의 세계이어서 천 개의 세계가 되며, 내가 변화하여 천의 석가가 되어, 천의 세계에 웅거하였다. 다시 천 개의 잎의 세계에 나아가 다시 백억의 사천하(四天下)와 백억의 보살ㆍ석가가 백억의 보리수 밑에 앉았으니, 이와 같은 천 개의 잎 위의 부처가 곧 나의 화신이며 천백억의 석가는 천의 석가의 화시인데 내가 본원(本源)이 되니 노사나라 이름하는 것이다’라 하시고, 게송에 이르기를 ‘나 이제 노사나가 바로 연화대에 앉아ㆍㆍㆍㆍㆍㆍ’라고 하고 내지 널리 설하였다. 이들 여러 글들을 준거하여 풀이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梵網經云. 爾時釋迦牟尼佛, 在第四禪魔醯首羅天王宮. 與無量大梵天王不可說不可說菩薩衆, 說蓮華藏世界盧舍那佛所說心地法門品. 是時釋迦身放慧光, 從此天王宮乃至蓮華臺藏世界. 是時釋迦牟尼佛, 卽擎接此世界大衆, 至蓮華臺藏世界百萬億紫金光明宮中. 盧舍那佛坐百萬連華赫赫光明座上. 時釋迦佛及諸人衆一時禮?盧舍那佛. 爾時盧舍那佛卽大歡喜. 是諸佛子諦聽. 善思修行. 我已百萬阿僧祇劫修行心地以之爲因. 初捨凡夫, 成等正覺, 爲盧舍那. 住蓮華藏世界海. 其臺周?有千葉. 一葉一世界. 爲千世界. 我化作爲千釋迦, 據千世界. 復就千葉世界, 復有百億四天下. 百億菩薩釋迦, 坐百億菩提樹下. 如是千葉上佛, 是吾化身. 千百億釋迦, 是千釋迦化身. 吾爲本源, 名爲盧舍那. 偈言. 我今盧舍那, 方坐蓮華臺. 乃至廣說. 此等諸文, 準釋可知.】

【논】
묻기를, “허공이 무변하기 때문에 세계가 무변하며 세계가 무변하기 때문에 중생이 무변하며 중생이 무변하기 때문에 심행(心行)의 차별도 또한 무변하니, 이와 같은 경계를 한계지을 수 없어서 알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무명이 단절된다면 심상(心想)이 없어질 텐데 어떻게 장 알기에 일체종지(一切種智)라 이름하는가?”답하기를 “일체 경계는 본래 일심으로서 상념을 떠나 있는 것이나, 중생이 경계를 잘못 보기 때문에 마음에 한정됨이 있으며, 상념을 잘못 일으켜 법성(法性)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와 여래는 망견, 망상을 여의어서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으며,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에 곧 이는 모든 법의 본성인 것이다. 그 자체(自體)가 모든 망법을 환하게 비추어 대지(大智)의 작요이 있어 무량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의 응당 알아야 할 바를 따라서 여러 가지 법의(法義)를 모두 열어 보이기 때문에 일체종지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또 묻기를 “만약 모든 부처에게 자연업(自然業)이 있어서 모든 곳에 나타나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면 모든 중생이 혹은 그 부처의 몸을 보거나, 혹은 신비한 변화를 보거나, 혹은 그 말씀을 들어 이익 되지 않음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세간에서 보지 못하는 이가 많은가?”답하기를 “모든 부처와 여래의 법신이 평등하여 모든 곳에 두루하며 작의(作意:의식적인 노력)가 없기 때문에 ‘자연(自然)’이라 한 것이니다만 중생심에 의하여 나타낸 것이다. 중생심(衆生心)이란 마치 거울과 같으니, 거울에 만약 때가 있으면, 색상(色像)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심에도 만약 때가 있으면 법신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問曰. 虛空無邊故, 世界無邊. 世界無邊故, 衆生無邊. 衆生無邊故, 心行差別亦復無邊. 如是境界, 不可分齊, 難知難解. 若無明斷無有心想, 云何能了名一切種智. 答曰. 一切境界, 本來一心, 離於想念. 以衆生妄見境界, 故心有分齊. 以妄起想念, 不稱法性, 故不能決了. 諸佛如來離於見想, 無所不?. 心眞實故, 是諸法之性. 自體顯照一切妄法. 有大智用無量方便. 隨諸衆生所應得解. 皆能開示種種法義. 是故得名一切種智. 又問曰. 若諸佛有自然業能現一切處利益衆生者. 一切衆生, 若見其身, 若覩神變, 若聞其說, 無不得利. 云何世間多不能見. 答曰. 諸佛如來 法身平等, ?一切處, 無有作意故, 而說自然. 但依衆生心現. 衆生心者, 猶如於鏡. 鏡若有垢, 色像不現. 如是衆生心若有垢, 法身不現故.〕

【소】
두 번째는 의심을 없애는 것이니, 두 번 문답한 것이 곧 두 가지 의심을 제거한 것이다. 처음 답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도리를 세웠고 다음은 그른 것을 들었으며 나중에는 옳은 것을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모든 경계는 본래 일심으로서 상념을 여읜 것’이라고 한 것은 도리를 세운 것이다. 이는 모든 경계는 비록 끝(邊)이 있지 않지만 끝이 없지도 않으니, 일심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이 없지 않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는 것이며, 끝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여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니, 이 때문에 ‘상념을 여의었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그른 것을 든 중에 ‘중생이 잘못 경계를 보기 때문에 마음에 한정됨이 있으며ㆍㆍㆍㆍㆍㆍ’등이라고 한 것은 보는 바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 옳은 것을 나타내는 중에 ‘망견ㆍ망상을 여의어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다’고 한 것은 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모든 법의 본성이다’라고 한 것은 불심(佛心)은 망상을 여의어 일심의 근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망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마음이 진실하다고 한 것이고 일심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본성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불심이 모든 망법의 체이며 모든 망법은 다 불심의 상(相)인지라 상은 자체를 나타내고 자체는 그 상을 비추는 것이니, 이와 같이 알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체는 모든 망법을 환하게 비춘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되는 이유를 말한 것이다. 다음은 두 번째의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답 중에 ‘거울에 만약 때가 있으면 색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이 중생심에도 때가 있으면 법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법신은 본바탕과 같고 화신은 영상(影像)과 같은 것이니, 이제 능현(能現:능히 나타남)의 본 바탕이라는 점에서 보기 때문에 ‘법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 현현(顯現)의 심심(甚深)중에 “과실이 있기 때문에 세존이 나타나지 않음은 마치 달의 모습이 깨어진 그릇에 있어서와 같다.”고 하고, 석(釋)에서 “모든 부처가 세간에 나타나지 않건마는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의 몸이 상주한다고 하니,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비유하자면 깨어진 그릇 중에는 물이 머물 수가 없으며 물이 머물지 못하므로 깨어진 그릇 중에는 실로 달이 있어도 나타날 수가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중생도 사마타의 미세한 상속이 없고 다만 과실(過失)의 상속만이 있어, 저 중생에는 실로 제불(諸佛)이 있지만 또한 현현하지 못한다. 물은 사마타의 연활성(軟滑性)에 비유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두 논의 글이 똑같이 부처의 나타남과 나타나지 못함의 뜻을 말했으나 그 비유한 것은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이제의 이 《기신론》중에 거울로 비유를 삼아 때가 있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근기에 의거하여 설《섭대승론(攝大乘論)》한 것이니, 부처를 보는 기(機)가 익은 것을 때(垢)가 없다고 말하고 장애가 있어 아직 익지 않은 것을 때가 있다고 설한다. 그러나 이는 번뇌가 현행하는 것에 대하여 곧 때가 있어서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니, 선성비구(善星比丘)와 및 조달(調達) 등은 번뇌심 중에도 부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섭대승론(攝大乘論)》중에서 깨어진 그릇을 비유로 삼아 사마타가 있어야 곧 부처를 볼 수 있음을 밝힌 것은 과거에 염불삼매를 수습하여 이를 계속해야만 금세에 부처의 몸을 볼 수 있는 것임을 밝힌 것이지, 금세에 정심(定心)이 되어야만 부처를 볼 수 있음을 말한 것은 아니니, 산란심(散亂心)으로도 또한 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륵소문경론(彌勒所問經論)》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또 경에서 제선(諸禪)이 수행처가 된다고 말하니, 그러므로 선(禪)을 얻은 이는 제행(諸行)을 잘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논 중에서는 반드시 선을 구해야 처음 발심하는 것은 아니니, 왜냐하면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발심하였어도 반드시 선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第二遺疑. 二番文答, 卽遺二疑. 初答中有三. 先立道理. 次擧非. 後顯是. 初中言一切境界本來一心離於想念者, 是立道理. 謂一切境界, 雖非有邊, 而非無邊, 不出一心故. 以非無邊故, 可得盡了. 而非有邊故, 非思量境. 以之故言離想念也. 第二擧非中, 言以衆生妄見境界故心有分齊等者, 明有所見故有所不見也. 第三顯是中, 言離於見想無所不?者, 明無所見故無所不見也. 言心眞實故卽是諸法之性者. 佛心離想, 體一心原. 離妄相故, 名心眞實. 體一心故, 爲諸法性. 是則佛心爲諸妄法之體. 一切妄法皆是佛心之相. 相現於自體. 自體照其相. 如是了知, 有何爲難. 故言自體顯照一切妄法. 是謂無所見故無所不見之由也. 次遺第二疑. 答中言鏡若有垢色像不現, 如是衆生心若有垢法身不現者. 法身如本質. 化身似影像. 今據能現之本質, 故言法身不現. 如攝大乘顯現甚深中言. 由失故尊不現. 如月相於破器. 釋曰. 諸佛於世間不顯現. 而世間說諸佛身常住云何不顯現. 譬如於破器中水不得住. 水不住故, 於破器中實有月不得顯現. 如是諸衆生, 無 奢摩他?滑相續. 但有過失相續. 於彼實有諸佛亦不顯現. 水譬 奢摩他?滑性故. 此二論文, 同說佛現及不現義. 然其所喩少有不同. 今此論中以鏡爲喩有垢不現者. 約機而說. 見佛機熟, 說爲無垢. 有障未熟, 名爲有垢. 非謂煩惱現行, 便名有垢不見. 如善星比丘, 及調達等, 煩惱心中能見佛故. 攝大乘中破器爲喩. 明有奢摩他乃得見佛者. 是明過去修習念佛三昧相續, 乃於今世得見佛身. 非謂今世要於定心乃能見佛. 以散亂心亦見佛故. 如彌勒所問經論中言. 又經說諸禪爲行處. 是故得禪者, 名爲善行諸行. 此論中不必須禪乃初發心. 所以者何. 佛在世時, 無量衆生皆亦發心, 不必有禪故.〕

대승기신론 소ㆍ별기(권 6)

△네 번째 수행심신분 중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들어 대의를 대략 나타내었고, 둘째는 법에 의하여 행상(行相)을 널리 분별하였으며, 셋째는 퇴전하지 않는 방편을 보여 주었다.
〔△第四修行信心分中有三. 一者擧人略標大意. 二者就法廣辨行相. 三者示其不退方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