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해는 무심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의식에 대한 비밀을 캐내어 간 달마의 통찰력은 너무나 심오해서 그의 이해는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거기에 어떤 것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그는 마치 우체국에서 전보를 치듯 가장 본질적인 말만 사용했다. 그대는 한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이 어록에서 볼 수 있다. 달마는 그것을 가장 가깝게 표현했다. 그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잘못이다.
달마와 같은 스승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전설이 있지만 달마에 관한 이야기는 그 모든 것들 중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그와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깊은 통찰력과 정확한 표현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란 이 우주가 생긴 이래 처음이다. 그는 어떤 비유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자도 아니며 신학자도 아니다. 그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용한 말은 화살처럼 날아가 그대의 심장에 꽂힌다. 그대가 할 일은 그에게 가슴을 활짝 여는 것뿐이다. 그대가 초청하지 않는 한 그는 그대 속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이는 한 그는 확실히 그대의 심장에까지 이를 것이다. 그대의 수용성은 궁극에 이르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오늘 저녁, 그의 제자에 의해 잘못 표현된 몇 가지만 수정하면 이 어록은 달마가 남긴 가르침의 진수를 보여 줄 것이다.
"만일 그대가 부처나 다르마나 보살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자신을 중생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달마의 말에 의하자면 모든 사람은 본래가 부처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따로 부처를 상상하거나 예배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그대 자신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게 된다. 그것은 그대가 가르침의 기본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예배해야 하거나 부러워해야 할 사람은 없다. 그대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 뜻은 너무나 깊어서 사람들에게 잘 이해되지 못했다.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그는 단지 유일신 사상을 부정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신처럼 존경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존재의 수만큼이나 신도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 속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무지(無知)가 그들의 본성을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부처나 다르마나 보살을 부러워하고, 그들을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자신을 중생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모든 사원과 회당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신 역시 과소평가하고 있다. 신은 다른 신으로부터 예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중생이 아니다.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본래 그는 불멸의 존재였지만 자신의 오해 때문에 스스로를 죽을 수밖에 없는 중생으로 과소 평가해 왔다. 그대 내면에 있는 생명과 의식은 불멸이며 영원한 것이지만 그대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해 왔다. 매일 그대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그대 자신의 죽음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시인들은 노래한다. "누구를 위해서 종이 울리는지 결코 묻지 말라. 그대를 위해 종이 울린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면 교회의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 전부에게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그러면 일터에 나가있던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서 죽은 사람의 집을 찾아간다.
그래서 시인은 그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대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모든 죽음은 상징적이다. 그것은 그대 역시 죽음의 문턱 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매일 그대는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간다. 사실 그대가 태어나는 그 날부터 그대는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대가 매년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죽음을 더 가까이 맞이하는 것이 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동물도 죽고, 나무도 죽고, 새도 죽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대가 죽음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내일, 아니면 오늘 오후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시간 문제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아는 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죽음은 환상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자신이 죽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볼 때 그대는 정말 그가 죽는 것을 보았는가? 아마도 의학적인 사실들만 보았을 것이다. 숨을 멈추고 심장의 고동이 더 이상 뛰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선언한다.
며칠 전에 파키스탄에 점령된 카슈미르 지역에서 한 사람이 그의 친구와 가족을 세 번 속인 일이 일어났다. 그의 나이는 135세인데 그는 세 번이나 죽었다. 사람들은 그가 세 번째 죽을 때는 그가 정말로 죽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두 번이나 그는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의 심장이 멈추고 의사는 그가 완전히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그런 상태에서 두 번이나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웃으며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 번째 그가 죽었을 때 매우 신중했다. 의사 역시 그가 진짜로 죽었는지 단정할 수가 없었다. 앞의 두 번도 확실히 그가 죽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람들은 의사에게 말했다.
"아마 앞의 두 번은 그가 당신은 속였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죽었을 것입니다. 의학적 상식에서 보는 한 이번에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세 명의 의사들이 그에게 사망 진단서를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눈을 뜨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 번에 내가 죽을 때는 진짜로 죽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한 번만 더 살아나자고 생각했다."
그 지역은 인간의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120세가 보통 평균 수명일 정도였다. 150세가 되는 사람도 수백 명이나 되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180세가 넘은 사람도 몇 명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밭에 나가서 일을 할 정도로 건강했다.
이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자 세계 각 국에서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세 번이나 사망진단서를 받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의학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육체가 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나의 호흡이 아니다. 나의 심장이 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있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빠져 나온다.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면 그대들은 모두 바보가 된다. 그때 나는 내 육체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호흡이 살아난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농부였다. 그는 요가 수행자가 아니다. 그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가 어렸을 때, 일곱 살이 채 못 되었을 때이다. 그는 어떤 수피를 만나서 죽음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너무나 순진해서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수피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몸을 빠져 나오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몸 안에서 그것을 지켜 보라. 그러면 갑자기 네가 몸밖으로 빠져 나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몸을 떠나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갈 것이다. 마음을 지켜보면 마음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너는 그저 지켜보는 자로 남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너는 육체를 빠져 나올 것이고 마음을 빠져 나올 것이며, 너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빠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너는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 되돌아가는 길은 그 반대로 하면 된다. 너는 육체에게 말하라. 나는 육체다. 나는 마음이다. 나는 호흡이다. 나는 심장의 고동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즉시 너는 몸과 점점 가까워져서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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