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용수의 중관사상
앞서 인도에 불교 사상적으로 가장 역사적인 인물로 용수와 무착, 세친이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또 다른 위대한 사상가인 용수龍樹는 실존의 인물이 분명함에도 '용수보살'이라는 부처에 버금가는 보살이라는 칭호로 부를 만큼 불교에서는 특별한 분입니다. ‘화엄경약찬게’의 시작이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인데, 여기에 나오는 용수보살이 바로 그분입니다. ‘화엄경’도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구해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용수는 '중론'中論이라는 길지 않은 저서로 그 사상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공중)'무의식계'를 설명하다 세친의 유식론으로 빠진 것도 어려운데, 한술 더 떠 중론까지 거론하다니 너무하지 않느냐며 불평하실 분도 있겠지만 ‘반야심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알아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오히려 쉽지 않은 설명을 해야 하는 제 처지를 딱하게 여기시는 심정으로 들어주십시오.
불교의 사상은 크게 두 줄기로 유식파唯識派와 중관파中觀派가 있습니다. 유식파는 바로 전까지 6,7,8식을 거론하며 말씀 드린 세친의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식학, 유식설, 유식론, 유식사상 다 같은 부류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이제 말씀 드리려 하는 '중관파'中觀派인데, 용수의 중론을 바탕으로 불교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를 중관사상이라고 하는데 놀랍게도 '연기緣起는 공성空性이고 중도中道' 라는 언어는 모두 용수의 중론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용수는 중론의 삼제게三諦偈로 일컬어지는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합니다.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因緣이 생기는 진리는 空이라 하며)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또한 假라고도 하며 이를 中道라 한다)
이는 공空 · 가假 · 중中의 삼제사상三諦思想으로 발전하여 후에 천태교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데 그 문제는 접어둡니다. 하지만 앞의 게송은 꼭 기억해 두십시오. 공과 중도란 용어의 정의를 가장 명확히 밝혀놓은 게송이기 때문입니다.
제 의도는 반야심경의 핵심 단어인, 또 불교의 키 워드인 '공'이 바로 중관사상의 핵심이며 용수의 작품이니, 유식사상을 알고 중관사상도 이해해야 반야심경을 이해하는 순서가 바르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비교해 드리는데 단 유의하실 전제가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유식사상과 중관사상은 대립된 사상입니다. 문제는 한국불교가 사상적으로는 중관의 공과 중도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식의 논리로 공과 중도를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원효의 화쟁和諍사상과 회통會通으로는 그러한 시도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불교는 중관사상을 귀착지로 하는 듯한데, 그 과정이 때로는 유식사상으로 불교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듯해, 행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기우입니다.
※ 본 내용은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