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부터는 ‘지묵스님의 선 이야기’를 토요일 발행신문에 연재합니다.
이 코너에서는 오랫동안 선원에서 정진해 온 지묵스님이 불자들에게 참선수행의 방법을 구체적이고도 쉽게 안내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입에만 달고 다녀선 제대로 공부 안돼
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말은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말로 하지 않아야 할 화두는 손을 대거나 입에 오르내려서 시한폭탄과 같아 터지면 모두가 죽는다. 화두, 화두 하고 말을 하라는 것은 결국 죽으라는 말인가.
화두가 항간에 많이 떠도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 시간에 화두 참구를 직접 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화두, 화두 하고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치고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화두는 큰 보물처럼 여겨 지극히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큰 보물을 동네 네거리에 내어 놓기를 누가 좋아하랴.
이와 같이 화두 공부는 자주 말로 하거나 화제거리로 삼아서는 이득이 없다. 그런 시간에 한 호흡이라도 아껴서 화두 참구를 하는 것이 좋고 부득이 나온다면 아껴야 한다. 침묵, 침묵 하고 침묵을 많이 이야기하면 결국 침묵을 깨어버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유독 화두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은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초심 참선자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는 뜻으로 생각한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우리가 수미산 정상만을 이야기한다고 될 일인가. 탑의 기단과 탑신은 놔두고 상륜부만 이야기 하자니 될 말인가.
우선 내적 문제에서는 참선자의 갈망과 고민, 선지식이 주는 자극, 지어온 공덕 등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외적 문제에서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이런 바탕 위에서 화두라는 상륜부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기초가 안정되지 않은데 어찌 상륜부 화두가 견디랴. 하하하, 우습다. 부처님이 화두란 말을 쓰지 않으셨어도 대도를 성취하신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자리에서 한 발짝 옮기지 않는 도리, 밖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해결하신 도리에 투철하신 까닭이다.
승가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병폐를 끌어안고 화두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단순히 화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스승과 도반과 환경은 참선 공부를 하는 삼대 조건이다. 어떤 투철한 선지식을 만나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역량이 발휘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 다음은 도반이다. 도반은 자신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힘을 발휘하기에 가히 도반은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환경의 산물이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고 다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초심 참선자가 아직은 환경을 극복하기는 이르다. 생각해보라. 우리 스승 고불 조주 스님은 안정된 일상생활 속에서 던진 말씀이 모두 화두였다. 굳이 화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순금같이 빛난 화두를 낳았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잠 자면서 오는 족족 받아 쳐서 홈런을 날린 것이다. 산승은 조주 스님의 법문을 펼치면서 떨림을 체험한 적이 있다. 조주 스님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 모두가 화두이다. 산승은 이런 입장에서 조주어록을 한번 이야기 하고 싶던 차에 마침 요청이 들어와 얼씨구나 하였다. 눈 밝은 선지식의 장군죽비를 기다린다.
지묵스님은…
1976년 송광사에서 법흥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졸업했으며,
아란야선원 주지를 걸쳐 현재 장흥 보림사 주지로 있다.
<죽비 깎는 아침>, <보충좌선의>, <산승일기> 등 30여권의 저술이 있다.
출처 : http://www.buddhist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