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같은 종류 중생은 무엇입니까?”/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1. 21:23

 

 

“같은 종류 중생은 무엇입니까?”

조주어록 보기 ⑨


고상한 가르침과

가까이 하는 사이에

어느덧 풍류에 젖어든다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고 행사는 것이

도인의 천진한 모습이다



조주스님이 스승 남전스님께 여쭈었다. “다른 종류 중생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같은 종류 중생은 무엇입니까?”

남전스님이 양 손으로 땅을 짚고 네 발 짐승 흉내를 내었다. 순간이다. 조주스님이 발로 밟아 넘어뜨리고는 열반당으로 돌아가 외쳤다. “후회스럽네, 후회스러워!”

남전스님이 듣고는 한 스님을 시켜서 물어보게 하였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후회를 합니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두번 밟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



강설 /

두 도인들께서 하신 모습이 그대로가 영아행(兒行)이다. 도인의 행 가운데서 영아행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천진 그대로의 아이 행이 어렵다는 뜻이다.

다른 종류의 이류(異類)중생은 보살이 원력(願力)으로 중생계에 태어나는 것이고 같은 종류 시류(是類) 중생은 중생이 제 업력(業力)에 끄달려 중생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곧 이류와 시류는 원력 보살과 업력중생의 차이이다.

조주스님이 스승에게 업력중생을 묻는데 스승은 그냥 두 손으로 네 발 짐승 흉내를 내어 땅을 짚어 보인다. 여기서 설명이 필요 없다. 다음에서 후회스럽다는 대목이 절정이다. 더 한번 밟아주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는 말이 반전의 극치.

성철스님 회상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시자가 말을 거슬린다고 생각한 성철스님이 시자에게 퇴방령을 내렸다. “너 이놈, 여기서 썩 물러가! 내가 올라 오라고 할 때까지.”

이렇게 시자를 내쫓고 지내다가 설 무렵이 되었을 때였다. 성철스님이 말하였다. “한번 시자 올라오라고 해라.”

시자가 기분이 좋아서 삭발을 하고 큰 스님을 뵈러 나아갔다. 이제 퇴방령이 해제 되었거니 하고.

성철스님이 시자의 절을 받고나서 지그시 바라 보고는 말하였다.“너 이놈, 달리 오라고 한 게 아니야. 내가 올라오라고 할 때 올라오라는 그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이제 가봐!”

시자는 잠시 망연자실하였다. 아니, 큰 스님이 그 말씀 때문에 부르셨다니!



각설하고 다시 조주 어록.

스승 남전스님이 목욕탕을 지나가다가 목욕탕 소임을 보는 욕두스님이 불을 때고 있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무얼 하지?”

욕두스님이 말하였다. “물을 끓입니다.”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이따 잊지 말고 나를 데리러 오게. 물소가 목욕을 하게 불러 주란 말일세.”

욕두가 대답하였다. “네, 스님.”

저녁 무렵에 욕두스님이 방장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남전스님이 물었다. “무슨 일인고?” “물소가 목욕을 하시라는 말씀을 올리러 왔습니다.” “고삐 줄은 가져왔는가?”

욕두스님이 남전스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묵묵부답. 그 뒤 조주스님이 남전스님께 인사차 들렸을 때였다. 남전스님이 욕두의 이야기를 꺼내자, 조주스님이 말하였다.“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자네라면 고삐 줄은 가져왔겠지?”

이때였다. 조주스님이 벌떡 일어서서 남전스님에게 다가가 홀연 코를 꽉 비틀어 쥐고는 고삐 줄로 잡아끄는 시늉을 해보였다.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됐다, 됐어! 좀 거칠긴 한데.”



강설 /

옛 시구절이 있다.

물을 떠서 움켜쥔 손바닥 안에

아름답게 떠있는 밝은 달이여

향기로운 꽃밭을 거니는 사이

옷깃마다 향기가 풍겨남이여.

고상한 가르침과 가까이 하는 새에 어느덧 옛 풍류에 젖어든다. 이 청복(淸福)이 주는 즐거움을 어디서 구하랴.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고 행하는 것이 도인들의 천진한 모습이다.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