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창천, 창천!”/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1. 21:35

 

 

“창천, 창천!”

조주어록 보기 ⑩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것이 있다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으면

반드시 추함이 있다



조주스님이 스승 남전스님께 여쭈었다. “사구(四句)를 떠나고 백비(百非)를 끊어서 한 말씀해 주십시오.”

홀연 남전스님이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이 노화상께서 평소에 잘 지껄이시더니만 묻는 데에는 한 말씀을 못하시네.”

곁에서 듣고 있던 남전스님의 시자가 말하였다. “화상께서 말씀하지 못하신다고 그러지 마십시오.”

이때 조주스님이 손을 번쩍 들어 시자의 뺨을 한번 내려쳤다.



강설 /

사구백비(四句百非)를 끊고 한 말씀하시라는 말은 입을 닫고 말씀 한마디 부탁합니다, 하는 뜻이다.

사구백비(四句百非)는 원래 인도 고대에서 외도들이 쓴 철학의 내용이다.

불교 교학에서는 용수 보살의 중론(中論) 중에 팔불중도(八不中道)로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거(不去), 불래(不來), 불일(不一), 불이(不二), 부단(不斷), 불상(不常)이 있다.

사구백비를 끊었다는 말이나, 팔불 중도를 떠났다는 말 대신, 선어록에서는 언어도단(言語道斷, 언어의 길이 끊어짐)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 마음 가는 곳이 사라짐)하라는 말을 쓴다. 명상(名相)이 있으면 반드시 시비분별이 있다. 사바의 이름과 모양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시비분별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큰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작은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것이 있다. 또한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미움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으면 반드시 추함이 있다.

선어록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

벽암록 제73칙 장두백(藏頭白) 해두흑(海頭黑) 내용을 살펴본다.

한 스님이 마조스님께 여쭈었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떠나서 제게 일러주시겠습니까? 무슨 까닭에 달마 조사께서는 서쪽으로 오셨습니까?”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산승이 오늘은 피곤하여 자네에게 말을 할 수가 없네. 지장(智藏)스님께 가 묻게나!”

스님이 지장스님에게 가서 묻자, 지장스님이 의외의 말을 하였다. “왜 마조스님께 묻지 않았어?”

스님이 말하였다. “마조스님께서 스님께 가 물으라고 했습니다.”

지장스님이 말하였다. “산승이 오늘은 머리가 아파 자네에게 말할 수 없네. 백장 회해(懷海) 사형님께 가 묻도록 하게!”

스님이 백장 회해스님께 가 묻자, 백장 회해스님은 말하였다. “산승은 알지 못하겠네!”

스님이 이러한 전후 이야기를 마조스님께 가 말씀 올리자, 마조스님이 말하였다.

“장두백(藏頭白, 지장의 머리는 희고) 해두흑(海頭黑), 백장의 머리는 검다)!”

산 너머 산이고 갈수록 태산.



다시 조주어록 본문 /

어느 하룻날이다. 스승 남전스님이 방장실 문을 닫고는, 문 밖에 재를 뿌려놓으며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말을 하면 문을 열어 주마.”

여러 스님들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남전스님의 뜻과 맞아 떨어지지 못하였다. 이때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창천(蒼天, 아이고)! 창천(蒼天, 아이고)!”

이 말 끝에 남전스님이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강설 /

창천은 본뜻과 그밖의 뜻이 있다. 풀이하면,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 봄 하늘, 동쪽 하늘과 같이 밝고 환하게 푸른 하늘이다.

구어의 창천은 아이고, 아이고의 속어이다.

자, 이런 해석은 그만 두고 왜 조주 스님은 창천, 창천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묻는다면 산승은 속이지 않고 말하리라.

“산승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창천, 창천!”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