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인제 뜰 앞의 잣나무가 보이는가?”/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12. 12. 02:51

 

 

“인제 뜰 앞의 잣나무가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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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현중현(玄中玄)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 스님은 일흔 너덧살은 살 것 같네!”

강설 / 현중현! 아득하고 먼 세월!

본질을 물으면 현상으로 대답하는 조주스님이시다. 또 현상을 물으면 본질로 대답한다.

봉암사 조실 서암스님은 후학의 사표가 되신 분이다. 차를 마다하고 가은읍에서 절까지 걸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느 달밤이었다. 노장님이 앞서 타박타박 걸어가는 신작로에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수좌들이 노장님 앞에서 차를 세워야 했다. 어르신 앞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휙 지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젊은 스님이 서암스님께 법을 여쭙는 자리에서였다.

홀연 젊은 스님이 할(喝)을 하였다.

“아-악!”

서암스님이 이르셨다.

“저녁에 갈치백반을 들었소?”

젊은 스님이 김이 빠져서 더 이상 법담을 잇지 못하였다는 이야기.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왕이 선타바 찾는 말을 할 때에는 어떻게 응해야 합니까?”

조주스님이 불쑥 일어나서 대령하는 신하처럼 몸소 차수(叉手)를 하셨다.

강설 / 어떤 스님은 왕이 선타바의 네가지 중 무엇을 찾을까, 조주스님이 아시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의외로 조주스님은 왕의 시중으로서 차수를 하고 선타바를 찾으러 가기 이전의 자세를 갖춘다. 차수(叉手)는 두 손을 모아 아래 배에 붙이는 자세이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현중현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스님은 일흔여덟살은

살 것 같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如何是道(무엇이 도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不敢不敢(어떻게 감당하랴! 어떻게 감당하랴)!”

강설 / 도(道)를 감히 입에 올리다니!

인도의 불법(佛法)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신선도(神仙道),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아서 이름이 바뀌는데 법(法)이 도(道)로 바뀌고 법우(法友)가 도반(道伴)으로 바뀐다. 도(道)의 이름은 불도(佛道), 차도(茶道) 등이 있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如何是法(무엇이 법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느니라. “칙-칙-섭-섭(攝攝).”

강설 / 칙칙섭섭은 도교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주술 진언이다.


조주스님은 법을 묻는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주술로 대답하신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조주 땅에서 진부까지 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3백리!”

학인이 여쭈었다. “진부에서 조주 땅까지 오는 거리는요?”

“(진부와 조주 땅은) 떨어져 있지 않아!”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현중현(玄中玄)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현(玄)을 안 것은 얼마나 되었느냐?”

학인이 대답하였다. “현(玄)을 안 것은 오래 되었습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마침 노승을 잘 만났어! 하마터면 현에 푹 빠져 현으로 이 중생이 죽었을 걸세!”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학인의 본래 자기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인제 뜰 앞의 잣나무가 보이는가?”

강설 / 별시시한 이야기 같은데 두 번 세 번 반복되는 것도 나온다. 모르면 그렇게 시시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1200년 전 큰스님의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은 가히 영구보존 국보급이라 한글자도 버릴 것이 없다.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