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스님이 법상에 올라 이르셨다.
“만약 그가 구참 납자라면 진실하여 고금을 꿰뚫지 못한 이가 없느니라.
만약 그가 신참 납자라면 간절히 참구해야 옳느니라.
이쪽으로 3백 5백명, 저쪽으로 1천명 하는 식으로 쫓아다니거나 비구 혹은 비구니 쪽으로 어느 쪽도 몰려다니지 말지니라.
총림에서 일개 방장을 한다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말이니라.
불법을 묻는 자리에서는 흡사 증사작반(蒸沙作飯)이라, 모래로 밥을 짓는 것처럼 어리석고 내놓을 만한 게 없어서 입도 떼지 못한 자들이니라. 심지어는 타비아시(他非我是)라, 남들은 다 옳지 않고 제 혼자만 옳다고 말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사람들이구나!
진실로 세상 사람들이 법답지 못하다고 하는 말을 내뱉게 하는구나!
화두의 뜻을 밝히려는 사람은 이 늙은 중의 말을 헛듣지 말기를 진정 바라니라.”
강설 / 조주고불화상의 독설이다. 양약은 입에 쓰다. 이 대목을 통해서 당시 당나라 때의 선방 현실이 어떠하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납자란 이름만 띈 사람들이 옷을 잘 차려 입고 말을 잘하고 떼 지어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꽤 된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세상은 언제나 세속의 일반 대중의 무대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편당편파를 하는 이들의 무대이다. 산승이 자주 쓰는 이야기이다. 숨어 지내는 왕새우의 해로은(海老隱)은 새우 그림의 화제(畵題)이다.
장야 성성좌(長夜 惺惺坐) 긴 밤에 성성하게 깨어서 좌선하고
천일 적적행(天日 寂寂行) 대낮에는 적적하게 숨어 지내듯 한다.
수지 해로은(誰知 海老隱) 은거해 왕새우 됨을 누가 진정 아는가?
탈각 득입명(脫殼 得立命) 껍질을 벗어버리고 안심입명 얻음을.
해로(海老)란 이름은 새우가 태어날 때부터 아주 어려도 수염과 굽은 등 때문에 바다의 늙은이란 애칭이다.
은(隱)은 은거(隱居), 안거(安居)의 뜻. 산모가 해산월(解産月)이면 어두운 산실에 찾아 들어가 어린 아이를 잉태한다. 은거, 안거란 말은 산실에 들어가 숨는다는 말과 같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뜻이다.
새우의 종류는 많으나, 크기로는 왕새우와 작은 새우로 나눈다. 원래 종자가 작은 새끼 새우는 세월이 지나도 새끼 새우 그대로 남는다. 왕새우 종자는 중간 성장과정에서 껍질을 한차례 벗고 나서 왕새우로 성장한다. 이 껍질을 벗는 시기가 다가오면 왕새우는 어두운 수초(水草) 속이나 바위 굴속 등에 들어가 숨어서 껍질 벗을 준비를 한다. 만일 숨을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새우는 껍질을 잘 벗지 못해서 왕새우도 되지 못한다.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이 숨어 지내는 기간이 꼭 필요하다는 뜻. 껍질을 벗고 왕새우로 성장하듯이, 자기에게 맞는 수행 길을 찾아 숨어 지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초심(初心)에서 옛사람은 말한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는 어떤 교화를 하나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이 늙은 중이 교화하는 걸 보았나”
“석가세존께서는 6년을 묵언 중에 계셨고 달마대사께서는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나오시지 아니하신 미더운 가풍이니라.”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부처가 세속 진로에 빠져 있으면서 여러 보살을 위해 설법하였음은 모두가 옷을 입혀드리는 행위에 속합니까?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교화하시는지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는 어디서 이 늙은 중이 교화하는 것을 보았는가?”
학인이 말씀 드렸다. “청컨대 화상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법당의 스님들이 다 이 중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른 스님이 여쭈었다. “청컨대 화상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가 말하라, 산승이 듣겠어.”
강설 / 지금 이 자리에서 연출되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다. 선의 정신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진행 중이고 남이 일이 아니고 자기의 일인 것이다.
선의 도리는 옛 부처께서도 모르셨는데 가섭존자인들 어찌 전하셨을까?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