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 행에 이어지는 작용인 식識
무명에서 어렵게 행을 거쳐 식識에 이르렀습니다.
식은 이미 진력나게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도 식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 게 바로 식의 작용입니다.
더군다나 모르는 것을'무명'이라고 착각하면 불교 공부는 그 자리에서 끝입니다. 무명은 성욕이 왜 일어나며 화는 왜 내는지, 그 본마음을 모르는 게 무명이지 '성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게'무명이 아닌 것입니다. 어릴 때는 성욕이 무엇인지 몰라도 남자라면 사춘기 때 자고 일어나 축축해진 팬티를 보고는 ‘아, 이게 성욕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이걸 무명이라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모른다’는 ‘안다’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식'의 작용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 설명하는 12연기의 식에 속한다는 말입니다.
종교는 종교를 이해시키려는 나름의 용어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경우'세례', '안식','휴거'등 사전을 찾아보아야 하는 단어들은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오히려 일상용어와 같이 쓰는'축복','은혜'처럼 간단해 보이는 용어들이 실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는 유교와 더불어 한국민의 역사 속에 너무나 밀착되고 녹아 있어서(이런 자만심이 한국불교를 망치고 있지만)도리어 그 용어의 진의가 곡해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무학無學이라는 말도 불교에서는'배운 적이 없다'가 아니라'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가 맞습니다.
12연기의 식識 역시 단순히'안다'의 개념 아니라'안다, 모른다는 생각 그 자체'즉, 인식의 작용을 일컫는 용어로 쓰는 것입니다.
※ 본 내용은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