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 죽음은 슬픔도 아니고 더더욱 끝도 아님
한 대학교수의 영결식 장면입니다. 수십 명의 제자와 유가족 등 수백 명의 애도객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고인의 약력소개 등이 끝나고 가장 엄숙함과 비통함을 실감할 수 있는 고인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인의 가족 중 한 분이 '꼭 영결식장에서 틀어야 한다'고 당부 하셨다며 울먹였습니다. 가족들도 고인이 자신의 영결식장에서 들려줄 마지막 메시지를 미리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모두들 가슴을 졸이며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영결식장의 스피커를 통해 생전에 녹음한 고인의 육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 영결식에 참석해 주신 추모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에, 그리고 아무개는 참석했냐? 아무개란 놈은? 아마 아무개는 바빠서 못 왔을걸...?'
고인의 육성은 가까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자신과의 일화며, 고마움 등을 마치 앞에 앉혀 놓고 말하듯 너스레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영결식장은 졸지에 눈물과 폭소가 함께 하는 '웃지 못할' 장소가 되었다 합니다.
제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참석했던 이에게 전해들은 오래된 실화입니다. 그 분은 세상을 참으로 낙천적으로 살았고, 항상 웃음과 유머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도 삶의 즐거움을 주었다 합니다. 나아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신념을 철저히 실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삶은 고통 투성이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의 '고집멸도'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에서 사성제四聖諦라 합니다. 이 사성제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교진여'등 비구에게 처음 설하신 법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성제를 잘 이해하면 불교의 본뜻에 상당히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성제의 첫 번째는 고성제苦聖諦 즉, 삶은 고통 이라는 선언에서 시작됩니다. 두 번째는 집성제集聖諦 즉, 고통의 발생 원인에 대한 고찰입니다. 세 번째는 멸성제滅聖諦 즉, 고통이 사라진 것에 대한 진리입니다. 네 번째는 도성제道聖諦 즉, 고통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공의 도리를 불법의 이해의 키워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지금은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라는 말을 사성제가 모두 공한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반야심경은 사성제의 자성조차 공한 것으로 인식해 주기를 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인 사성제가 '헛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지는 않겠지요.
또 사성제의 첫 번째인 '삶은 고苦' 라는 선언도 적어도 죽음을 미리 당당히 준비하여 자신의 장례식장까지도 자기 식으로 반전시켜 죽음에서 삶 자체에 대한 교훈을 준 교수 앞에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과연 이 역설을 어찌 풀어가야 할까요? 사성제를 하나씩 풀어 가면 그 해답이 있습니다.
※ 본 내용은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