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
정견=중도=공=깨달음, 이 등식이 성립할까요? 갑자기 웬 거창한 소리냐고 깜짝 놀라실 분이 있겠지만, 제 홈 페이지(www.sejon.or.kr)에 회원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올렸던 질문입니다.
제 홈 페이지 회원이 3만여 명이고 그 '중'에는 '중'들(제가 중이니 스님들은 이해해 주시겠지요) 이 1천 7백여 분에 달합니다. 타 종교 성직자도 300여 분에 이릅니다. 이렇게 막강한 회원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이 정도 수준의 논제가 사이버상이지만 토론 가능한 것입니다.
제 자랑이 되어버린 감이 있긴 하지만, 이 등식처럼 사실 정견은 깨달음과도 직결되는 8정도의 첫 관문이자 8정도 이해의 핵심입니다.
아래의 글은 40대 회원들이 정견=중도=공=깨달음이 성립하냐는 제 질문에 답하신 것 중 몇 개를 발췌한 것입니다. 같이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회원 가- 중도: 사성제와 팔정도, 공과 연기를 다 터득하고, 보살 수행이 다 이루어진 후, 다시 세속으로 나왔을 때의 삶. 공: 12연기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 정견: 사성제와 12연기를 바르게 이해해서 바른 관觀을 정립하는 것(실천과는 좀 거리가 있음) 깨달음: 공의 터득. 위와 같은 견해가 틀리지 않은 것이라면 ‘공’의 터득이 바로 ‘중도’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즉 ‘공’을 터득한 뒤에 세속에서 실제로 활용(적용)되는 것이 ‘중도’라고 봅니다.
-회원 나- 정견=중도=공=깨달음을 식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성립할 수가 없죠?같은 선상도 아니고...정견이 이루어지면 공 도리를 알아서 중도를 이루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는 있었지만요.
깨달음이란 말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작게든 크게든 깨닫고 삽니다. 그것이 어떤 방면이든지요. 그래서 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모두 한 소식(?)하신 분들입니다.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일관되게 행하였으므로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질서(법)를 특히 잘 밝힌 사람들이 과학자들이고, 사람의 마음을 잘 밝힌 사람들이 심리학자, 철학자들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그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더 나아가 생사를 관觀하여 거기서 벗어나는 도리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공 도리를 알았다고 깨달았다고 할 수 없으며, 중도를 행한다고 깨달았다고 할 수 없으며, 견해가 아주 바르다고 해서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회원 다- 중도=공=정견 < 정견=평상심=깨달음 사성제인 고. 집. 멸. 도에서 벗어난 상태가 공을 체득한 중도中道 입니다만, 공의 체득은 깨달음에 이른 성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승적인 자기 수행인 자리自利의 정견 단계이며, 미혹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리라는 원을 지닌 대승적 이타利他의 정견개념인 '평상심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깨달음에 이른 완성된 정견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회원 라- 중도와 공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소승의 깨달음은 사성제의 멸제인데, 멸제에 이르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도제(팔정도)가 설해졌고 도제의 가장 근본이 정견입니다. 소승의 최고 자리는 아라한인데,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해공解空 수보리를 아라한이라고 하신 것처럼 공을 체득한 것이 소승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승의 깨달음은 보살을 거쳐 부처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소승의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닦아야 하는데, 정견은 공, 중도의 견해를 견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견을 바탕으로 중도적으로 사유함이 정사, 중도적으로 생각함이 정념(사념처마다 알아차림) .... 이렇게 팔정도를 닦으면 번뇌는 점차 사라지고 멸제에 이르러 필경에는 공을 체득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글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정견'이 흔히 단정짓는 '바른 견해'란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는 개념이라는 것을 인식시켜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정견을 갖는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2005년은 마침 아인슈타인 탄생 100주년이라 세계적인 행사가 있었습니다만, 아인슈타인의 사후 그의 뇌는 수십 년간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세계의 유수한 뇌 과학과 관련된 연구소에서는 거의 모두 세계적 천재인 아인슈타인의 뇌가 보통사람의 뇌와 '무엇이' 다른지를 연구했고, 또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천재의 뇌 구조는 '역시 다르다'고 발표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범한 결정적 오류는 아인슈타인의 뇌는 '다르다'를 전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에, 그 연구의 성과들이 다른 뇌 전문가가 볼 때는 실은 '가치 없는' 연구들로 결론지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뇌라고 보통사람의 뇌와 다른 것이 없는데, 다르다는 확신을 갖고 어떻게 해서든 다른 점을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8정도의 정견을 들이대며 비판하면, 정견을 갖지 못한 뇌 전문가 즉 아인슈타인 마니아의 착각이라는 말입니다. 정견은 이렇듯 외형상으로는 8정도의 하나에 불과할지 몰라도, 결국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정견은 비록 초기불교의 언어이지만 금강경의 '상이 상 아님을 보라(見諸相非相)'나 법화경의 '있는 그대로 보는 것(如實知見)'과도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 본 내용은 성법스님 저서인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